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지난 10일 미국 건설산업연구원(CII)와 공동으로 개최한 '성과향상 전략 국제세미나' 모습 |
2000년 이후 국내 건설업체들의 해외수주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5년 108만달러였던 해외건설 수주액은 2014년 66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품목인 반도체, 자동차, 선박의 수출액보다 크고, 경제적 파급효과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최근 해외사업 부실로 인한 어닝쇼크에 직면하는 등 급증하는 수주액과 더불어 수익성 악화라는 복병을 만났다. 이로 인해 해외수주 확대 전략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부실 해외프로젝트의 저가수주 여부를 사전에 평가할 수익성 평가기구 설치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우리 건설기업들의 무리한 저가입찰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저가입찰에 한정되는 문제만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건설기업은 시공 부문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전체적인 사업을 관리하는 수행능력이 아직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점이 한몫했다. 사업을 진행해 가면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적시에 발견하고 해결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다. 활발한 시장개척과 프로젝트 입찰을 통해 전체 파이는 크게 만들었지만 생산성 있는 사업관리를 통해 파이가 줄어들지 않도록 지켜내는 노력은 부족했던 탓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지난 10일 건설정책 및 사업관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의 건설산업연구원(CII, Construction Industry Institute)과 ‘성과향상 전략’을 주제로 한 국제공동 세미나를 갖고 건설산업의 성과 개선을 위한 전략과 대안을 논의했다. 미국 CII의 성과측정프로그램인 BM&M(건설사업별 성과의 비교분석 및 모범사례를 도출해 생산성 향상 전략수립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과 10-10 프로그램(건설사업 단계별 사업참여자 설문을 통해 사업성과를 분석해 적시에 문제점을 개선할 모범사례를 제공)을 토대로 한 리스크관리, 변화경영, 자재관리, 품질관리 등 생산성 향상기법들을 공유했다.
이들 프로그램의 기틀이 되는 시스템은 모범사례(베스트 프랙티스)를 선별하고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촘촘하게 짜여진 사후평가제도다. 공공건설 사업을 추진할 때 기존의 유사한 사업의 추진과정과 결과를 참고해 시행착오를 줄인다는 목적 아래 국내에서도 지난 2000년부터 총공사비 300억원 이상 건설공사를 대상으로 준공 후 일정기간(5년 이내)이 경과한 시점에 사후평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시스템의 체계성도, 관리주체도 불명확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건설공사 사후평가제 운영 상황은
건설공사 사후평가제는 공공건설사업의 계획 단계에서 예측한 이용수요·사업비·사업기간 등에 대한 예측치를 준공 후에 평가함으로써 차후 유사사업 추진 시 그 평가결과를 참고해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2000년 도입됐다. 평가 자체는 사업을 발주한 발주청이 직접 수행하거나 외부용역을 통해 대행할 수 있도록 했고 평가 결과는 사후평가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심의토록 운영하고 있다.
평가항목은 공사비ㆍ기간 증감률, 안전사고, 설계변경, 재시공 등을 평가하는 ‘사업수행성과 평가’, 수요(예측, 실제), B/C(예측, 실제) 등 경제적 항목을 평가하는 ‘사업효율 평가’, 그리고 민원, 하자, 지역경제, 환경 등을 평가하는 ‘파급효과 평가’로 나뉜다. 건설사업의 계획수립 단계부터 준공 후 단계까지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사업수행의 효율ㆍ효과성은 물론 동종ㆍ유사 프로젝트와 비교한 미진 사항을 면밀하게 파악해 향후 유사한 건설공사 추진 때 중점적으로 관리할 사항을 미리 판단토록 도와준다.
그러나 많은 건설사들이 건설공사를 준공하고 난 후에 공사비, 공사기간 등 사업수행 성과와 관련해 분석한 후 ‘피드백’하는 체계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있지 않다. 이로 인한 ‘비정상의 관습화’로 기존 기술방식을 반복적으로 고수하게 됨으로써 기술경쟁력을 향상할 개선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건설사업 평가체계는
글로벌 건설시장에서 최고의 기술력과 사업관리능력을 인정받는 미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건설사업 생산성을 평가하고 이를 해결할 모범사례(Best Practice)를 연구하고 있다. 1983년 28개 회원사를 중심으로 출발한 미국의 건설산업연구원(CII)은 그 구심점이다. 현재 68개 발주기관과 73개 시공사들이 회원으로 등록된 CII는 대학들과도 연계해 건설사업관리를 위한 다양한 주제도 연구하면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리스크 분석, 인력관리, 물류관리, 정보관리 등 건설사업관리를 위한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CII가 1990년대부터 운영하고 있는 ‘Benchmarking&Metrics(BM&M)’ 프로그램은 여러 회원사들의 사업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에 대한 건설사업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이런 평가를 통해 건설업체는 자신의 기술력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받고, 그 결과를 활용해 효과적인 건설사업관리를 해 나가고 있다. 이에 힘입어 BM&M을 적용받은 CII의 회원사들의 경우, 평균 안전사고율이 산업 전체 평균치보다 훨씬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에는 이를 뛰어넘어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의 문제점을 조기에 발견,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그게 바로 CII가 최근 발표한 10-10프로그램이다. 기획, 설계, 시공, 시운전 등의 사업 단계마다 사업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취약한 부분은 없는지를 체크하도록 시스템화한 새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진행 중에 문제를 앞서 발견한 후 더 악화되기 전에 해결하고 있다.
<산업전체와 CII 회원사 간의 ’작업시간당 안전사고 발생률‘ 추이 비교> |
국내 건설업계 체질 개선하려면
국내시장 침체에 따라 해외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든 건설업체들이 수주에만 급급해 원가와 기술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제살 깎아먹기식 저가수주’에 나서면서 해외건설 수익성이 나날히 악화되고 있다. 탄탄한 기술력에 기반한 선순환적 해외수주가 이뤄져야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글로벌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기술경쟁력 제고가 요원한 현실이다. 어찌보면 스스로의 기술력에 대한 현재 위치 파악도 힘든 상황에서 기술력 향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도 잘 모르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건설사업 전반에 걸쳐 프로젝트 수행성과에 대한 평가를 하고, 평가 결과를 차후 유사한 프로젝트 수행 시 참고자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물론 성적표를 받았다고 성적이 올라가지 않듯이, 평가를 했다고 기술경쟁력이 단번에 향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검진(평가)을 통해서 현재 자기 자신의 상태(기술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기초체력(기술경쟁력)을 보강한다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동안 건설공사에 대한 사후평가는 공공공사를 수행한 발주청이 수행한 후 그 결과를 건설CALS시스템에 축적토록 운영되고 있지만 향후 건설공사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미있는 분석자료를 제공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분석자료를 제공할 시스템, 체계, 주체가 부재한 탓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도 건설공사 사후평가를 전문적으로 관리할 기관 설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후평가제의 도입취지에 맞춰 건설공사 추진과정에서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줄여 기술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건설공사 사후평가제가 정착, 활성화되면 제도 적용에 따른 효과가 비단 공공부문에 국한돼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 CII의 사례를 봐도 평가에 따른 가시적 효과가 전반에 나타나고 있듯이, 차후 정부는 민간부문에도 점진적으로 평가제를 서비스할 필요가 있다. 앞서 이를 경험한 미국 CII와의 긴밀한 교류ㆍ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 진출하기 전에 국제비교를 통해 자사의 기술경쟁력을 정확히 평가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업그레이들할 체계를 구축하는 데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
제공=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석ㆍ이두헌 수석연구원
정리=김국진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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