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ㆍ미국회계기준도 의무적 명시하지 않아
업계 의견 충분히 청취 후 산업발전 이끌 방향 고민을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방안의 주요 내용> |
지난 10월28일 발표된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방안’에 대한 건설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원가율’을 공개하는 게 이번 조치의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건설공사 손익에 있어 추정 총 계약원가와 미청구 공사액의 공시는 곧 원가율 공개를 의미하므로 재고의 여지가 많다는 게 건설업계 입장이다.
대우건설의 분식회계 의혹,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저하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점을 감안한 조치로 분석된다. 건설 및 조선업종 기업들은 최근 ‘어닝쇼크’ 혹은 ‘빅배스’ 등의 논란에 휩싸였고 장부상 이익이 일시에 대규모 손실로 전환되는 소위 ‘회계절벽’ 현상은 금융시장을 당혹케 했다. 건설 및 조선기업들의 막대한 미청구 금액이 향후 건설기업 등의 대규모 부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회계상 주된 원인은 수주산업 특히, 건설업종 기업들이 진행 기준의 적용 시에 투입원가율(이하 투입법)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투입법은 ‘추정의 합리성’이 보장돼야 실제적인 현 경영실적을 회계에 반영할 수 있다. 즉, 총 예정원가를 추정할 때 합리성이 확보돼야 하며, 공사가 진행 중일 때는 원가 상승을 즉시 인식하지 않을 경우 당기수익이 왜곡될 수 있다. 이로 인해 공사가 완료돼 실제 원가를 반영할 때 회계상 대규모 손실을 반영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번 방안의 목표를 ‘회계 신뢰성 제고 및 투자자 보호 강화’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최근 잇단 건설 및 조선업종 기업들의 회계 부실과 부정 의혹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별 내부 회계 및 공시시스템 준비 미흡
이번 방안은 최근 일련의 ‘회계절벽’ 현상에 대한 대책과 수주산업의 특성을 반영해 회계 투명성을 확보할 조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며, 수주산업의 회계 투명성 제고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장기적 건설산업의 투명성 확보에 있어 건설기업의 회계 정보 투명성 확보가 최우선 선결과제란 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업계도 회계보고서 상의 상세한 감사 서술이 보고서의 신뢰도를 개선할 것이란 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번 조치의 빌미를 업계 스스로 제공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또한 경기에 민감한 산업 특성상 수주산업에 대한 회계투명성 확보의 필요성에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당초 태스크포스팀(TFT)에서 각 사업별 원가 정보의 공개를 논의했다가 총 예정원가 공개로 한정한 점에 대해서도 다행이란 반응이다.
그러나 건설기업들이 처한 최근 경영 여건과 우리나라 기업회계 전반의 시장 여건을 감안할 때, 다소 시기상조라는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건설과 조선산업에만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데 따른 타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와 국제회계기준에서도 요구하지 않는 사항을 우리나라만 적용하는, 과도한 규제 가능성은 뒤로 하더라도 여러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점은 추정 총 계약원가 공개 문제다. 개별공사 원가가 아니더라도 추정 총 계약원가의 공시는 수주산업 특성상 추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신뢰성 있는 회계정보를 제공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내 건설공사도 추정이 어려운데, 해외공사는 더 어려워 실제 해외플랜트 등 장기간이 소요되는 해외공사의 경우 공사가 종료되는 시점에야 원가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주산업의 원가 공개는 수주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경쟁요소인 원가가 공개되면 건설기업의 전반적 영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정확한 회계정보를 필요로 하는 건설기업 이해 관계자들의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크다. ‘핵심감사제’의 도입도 우리나라 기업회계상 외부 감사기능의 여건상 시기상조로 여겨지는 바, 기업 회계의 외부 감사기능의 명확한 절차나 방식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해관계자들 간 충돌 등 자칫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도 있다. 미청구 공사금액의 수익 인식시점에 따른 문제로서 손실 추정을 하기 어렵고, 자칫 과다부채로 인해 건설기업 신용도를 하락시킨다는 점도 자칫 회계정보 이용자들의 판단 예측성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특별감리 및 테마감리의 강화에 있어서도 건설기업에 대한 금융기관과 금융당국의 부정적 시각 아래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면 어려운 시장환경 하에 있는 건설기업의 경영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상당하다.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의 건설업계 영향 및 문제점> |
미국회계기준도 회계처리 및 공시 자율성 존중
미국회계기준과 국제회계기준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건설업종에 대해서는 독립적 기준서를 제정해 사용하고 있다. 건설업종의 경우 수주산업이란 특성과 사업 진행기간이 긴 특성을 갖고 있어 수익 인식 기준에 대한 방향성 제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논쟁이 심한 원가와 관련한 정보 공개는 국제회계기준과 미국회계기준에서도 의무적인 공시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인위적이고 상당한 주관적 판단이 요구되는 원가 관련 사항들에 대한 주석공시도 명시하지 않는다. 건설공사 계약별 원가정보 공시와 관련해 국제회계기준서와 미국회계기준(ARP나 SOP 등) 어디에서도 공시 의무화와 관련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다만, AICPA(미국공인회계사회)의 감사 및 회계처리 가이드라인에 바람직한 정보공시 유형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도급계약금액 기준 상위 20% 정도의 공사계약에 대해서만 공사계약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국제회계기준과 미국회계기준 모두 당기 공사원가에 대한 정보공시를 요구하고 있는 정도이지 추가적으로 공사원가와 관련된 다른 정보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는 재무제표 공시의 목적이 회계정보 이용자들로 하여금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할 때, 진행 중인 공사의 원가정보는 사실상 사전적 예측 정보로서, 회계기준에서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세부 추진과정에서 고려할 점은
수주산업 특히, 건설산업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회계처리 방식에 대한 개정이 이뤄질 필요성은 있다. 또한 잘못된 관행이 지속돼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왜곡된 기업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는 외부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기업 내부적으로도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분명히 올바르게 잡아야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규제 차원의 시각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실제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하는 것이 기본 전제다. 2011년 IFRS 도입에 따른 K-IFRS(한국채택회계기준)에서도 수익인식 시점의 예외를 인정한 것은 건설기업의 부채비율 급증과 수익성 급감이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이번 조치는 최근 일련의 회계의혹 및 부실사태에서 비롯됐다하더라도 금융당국의 판단 재량에 따른 기업활동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정리=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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