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의 수명은 건축물 구조체의 내구성과 설비의 수명 등 물리적 수명이 길고 짧은 것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변화나 기능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 역시 수명을 다하게 된다. 우리나라 공동주택은 구조체의 물리적 수명은 길지만 설비의 유지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조기 노후화하고 있으며, 사회ㆍ기능적 이유로 조기에 전면철거 재건축으로 연결되고 있다. 법적으로도 준공 후 30년이 지나면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규정됐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주택의 평균 수명은 선진국에 비해 3분의1 정도로 짧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3.7%에 도달해 건설시대에서 재고시대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자원 절약, 내재 에너지 절약, 건설 폐기물 발생 억제, 소유자 비용 부담 감소를 위한 주택의 장수명화는 중요한 과제이자, 방향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주택유형으로 자리잡은 공동주택의 장수명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일반 공동주택과 장수명 공동주택의 차이> |
장수명 공동주택이 다른 점은
장수명 주택을 말 그대로 하면 100년 정도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수명이 긴 주택이다. 단순한 물리적 수명뿐 아니라 시대 흐름과 변화, 수요 다양성까지 수용할 수 있는 사용성능이 좋은 주택을 포괄한 의미다. 시간이 흐르면 주택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노후화되고 변하지만 구조체와 공용설비 및 공용시설 등과 같이 공동생활을 지지하는 부분(Support)은 변화가 적다. 단지 내 거주자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므로 수명이 긴 부분이다. 반면 개별 세대 내부의 전용설비나 내장재들은 시대 변화에 민감하고 개인적 기호에 따라 좌우되는 부분(Infill)으로, 수명도 짧다.
수명이 긴 부분과 짧은 부분들이 주택에 혼재돼 있다. 물리적 수명이 짧은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사용성능이 단축된다. 따라서 수명과 사용 성능이 긴 부분과 짧은 부분을 명확히 분리해 설계ㆍ시공하면 수명이 긴 부분을 유지하면서 짧은 부분에 한해 쉽게 보수ㆍ교체ㆍ리모델링하는 방법으로 사용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게 장수명 주택의 기본 원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수명 주택은 구조체의 내구성을 바탕으로 설비나 내장의 리모델링 및 유지관리 용이성과 더불어 공간 사용의 가변성까지 일반 주택보다 우수한 주택으로 볼 수 있다.
통상적인 공동주택은 내력벽식 구조, 세대 전용공간 내 전용ㆍ공용설비의 혼재, 내부공간 구획벽 및 공간 구성 고정, 설비의 구조체 내부 매설, 설비 점검 및 교체에 대한 고려 부족, 화장실 층하배관 등의 특징을 갖는 탓에 가변성, 리모델링, 유지관리상 한계가 뚜렷하다. 이와 달리 장수명 공동주택은 기둥구조 방식, 전용ㆍ공용설비 간 명확한 분리, 내부공간 구성의 재배치 및 변화, 설비의 구조체 매설 탈피, 점검 및 교체가 용이한 설비 구성, 화장실 층상배관 등을 통해 가변성, 리모델링, 유지관리가 용이한 게 차이점이다.
<비용절감형 장수명 주택의 개념도> |
‘비용절감형 장수명 주택’을 내건 이유는
장수명 주택은 기존 주택과 차별화된 개념, 설계방법, 기술, 성능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10∼20% 높아진다는 게 산업계의 시각이며, 2010년에 종료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선행 연구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경제성을 우선시하는 산업계, 소비자 특성상 장수명 주택을 활성화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장수명 주택의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고 그 개념과 관련 기술 개발도 이뤄졌지만 시장에서는 극히 일부만 받아들여질 뿐, 확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장수명 주택인증제도를 도입했고 장수명 주택의 확산을 위해 초기 건축비용을 줄일 기술, 제도적 대안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일환으로 나온 것이 바로 비용절감형 장수명 주택이다. 현재 일반화된 벽식구조의 공동주택 건축비 수준으로 장수명 주택을 건설하는 게 목표다. 세부적으로는 장수명 주택의 4가지 인증등급 중에 두 번째인 양호 등급의 건축비를, 일반적인 벽식구조의 기본형 건축비 수준으로 맞추는 게 골자다.
비용절감형 장수명 주택은 일반 벽식구조 공동주택이 가지는 성능 수준과 건축비용을 유지하면서도 내구성, 가변성, 수리용이성과 같은 성능을 강화시켜 장수명 주택의 취지를 살리면서 확산 유인을 높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지향점의 기준인 장수명 주택 인증제와 밀접하다. 주택법 제21조의6(장수명 주택 건설기준 및 인증제도 등)에 근거를 둔 인증제는 내구성, 가변성, 수리용이성이란 평가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50점 이상 일반 △60점 이상 양호 △80점 이상 우수 △90점 이상 최우수로 등급했다. 현재 1000가구 이상 공동주택 단지는 일반등급을 의무적으로 취득해야 하며, 우수와 최우수 등급을 얻으면 용적률과 건폐율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장수명 주택 인증제도의 틀> |
<비용절감형 자수명 주택 평면형 예시(59㎡형)> |
비용절감형 장수명 공동주택 개발방향은
장수명 주택의 상대적으로 높은 건축비에 따른 건설업계와 소비자들의 기피나 거부감을 줄임으로써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발판이 바로 비용절감형 장수명 공동주택 모델이다. 현행 인증제도상 4가지 등급 중에서 양호 등급에 맞출 경우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내구성은 장수명주택 인증제상 3등급으로 설정해 시방서에서 명시하는 일반 수준의 콘크리트 피복 두께와 품질 정도로 구성한다.
가변성도 3등급이 목표다. 다만 단순한 주동 형태를 채택해 디자인과 무관한 비용을 수반하는 요철 형태를 배제한다. 구조도 기둥을 사용하는 라멘구조와 무량판 구조를 활용하되, 단순한 형식을 사용하고 기둥 열을 일치하는 동시에 지상부와 지하부를 동일한 구조로 설계해 추가 비용 발생을 최소화한다. 내장 벽체는 건식화해 가변이 필요하거나 해체 및 설치가 가능한 접합 방법을 채택하고 화장실은 슬라브 다운이 없는 층상배관을 활용해 가변성을 높인다. 전용면적 59㎡ 소형 주택은 세대 구분형 평면을 적용한다.
수리용이성의 전용과 공용부분도 3등급이 기준이다. 공용공간 내 공용설비(급수계통)를 집중 배치해 세대 내부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적절한 크기의 점검구를 설치해 점검ㆍ보수ㆍ교체도 쉽게 한다. 세대 전용공간 내에서는 공용설비와 분리하고 향후 리모델링이나 보수 때 비용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는 전용설비의 구조체 매설 방식도 최대한 배제하는 방향으로 보급모델을 만든다.
실시설계 때 구조체 비용을 절감하고 내장과 설비 등 비용을 줄일 검토도 병행한다. 각 자재와 설비별로 세부 비용을 줄일 대안을 찾기 위한 검토는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를 시공 측면에서 검토하고 BIM(빌딩정보 모델링)과도 결합해 정확도를 높일 계획이다. 이런 검토작업이 마무리될 내년 상반기 중에 15층 건물 2개동의 비용절감형 장수명 공동주택을 시범시공해 기술, 비용, 제도를 종합적으로 검증할 계획이다.
제공=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수암 선임연구위원
정리=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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