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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창] 보혁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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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02 08:00:15   폰트크기 변경      

황인용(수필가)

 

​“꾸밈이 실질보다 앞서면 형식적이고, 실질이 꾸밈보다 앞서면 촌스럽다. 꾸밈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어야 군자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바로 문질빈빈(文質彬彬)이란 사자성어의 출전이기도 하다. 여기서 군자에는 위정자의 뜻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문질빈빈의 대통령을 소명할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공자가 문질빈빈을 말하자 제자인 극자성(棘子成)은 납득하지 못했다. “군자는 실질만 갖추면 그만이다. 형식은 따질 게 못된다.” 이렿게 반론을 제기하자 자공(子貢)이 나섰다. “애석하도다, 그대의 군자에 대한 정의는! 대저 실질은 형식이고 형식은 실질이다. 호랑이 가죽에 털이 없다면 개가죽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공자가 살았던 당시는 인류 최대의 암흑기라는 춘추전국 시대였다. 미증유의 암흑 시대를 맞아 공자는 필사적으로 광제창생(廣濟蒼生)의 길 모색에 나섰다. 무엇보다 공자가 변역(變易)의 경전인 <주역(周易)>을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지도록 읽었음은 그만큼 사회의 변혁을 갈망한 까닭이었다. 그러한 한편으로 공자는 주(周)나라의 전통을 지키려한 보수주의자였다. 말하자면 공자는 진보적 보수주의자였던 거다.


이제 곤경에 처한 대한민국의 보수가 살 길도 공자 같은 과감한 혁신주의의 수용에 있지 않겠는가? 그 결과 한국의 보수와 혁신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이를 일러 보혁빈빈이라고 이름할 수 있을 터이다.


보수가 건강하고 따뜻하고 합리적인 진보적 보수주의로 거듭 태어나야 함은 보수 자체만을 위한 주문은 아니다. 보수가 혼수상태에 빠지면 진보 또한 긴장감을 잃고 지리멸렬해지기 때문이다.


과거를 반성하자면 보수와 진보는 오랫동안 사생결단 생존 시합을 처절히 벌여 왔다. 그 궁극적 결말이 공멸이라면 어찌 공생의 터전을 닦을 절호의 기회가 아니리오? 보수는 진보적 보수로, 진보는 보수적 진보로 환골탈태하는 일 말이다. 그래야 피차 상대방을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는 희망의 조짐이 없지도 않으니 새 천년을 공생인(호모 심비우스)의 시대라고 규정한 석학들이 주인공이다. 그렇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배타와 독점을 위한 정치공학이 난무했을 뿐이라면 국민통합 시대를 열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누가 이념적으로, 지역적으로, 계층적으로, 세대 간으로 갈가리 찢긴 대한민국을 통합할 적임자이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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