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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와 사회 지도층의 부끄러움을 강조한 고염무의 초상. |
한 지역의 도의원이 국민들을 쥐의 한 종류인 레밍에 비유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레밍의 습성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도 모르면서 무작정 국민을 비하하려고 쥐에다 비유한 것이다. 종족 보존을 위해 개체 수를 자발적으로 줄이는 레밍보다 못한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권력자와 공직자의 부도덕하고 부정한 언행의 원인을 파고들면 예외 없이 개인이나 패거리의 사사로운 욕심과 만나게 된다. 이는 이들의 공사 구별에 심각한 이상이 생겼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공직자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데, 옛 사람들은 이런 문제의 근원을 가정과 교육에서 찾고 있다.
<성리대전>을 보면 “사람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교인(敎人), 사인필선사유치(使人必先使有恥).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무치즉무소불위(無恥則無所不爲)”라고 했다. 자신의 언행이 남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만 그릇된 언행을 일삼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옳은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계시를 받은 청 나라 때의 학자 고염무(顧炎武)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렴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 없고(불렴즉무소불취(不廉則無所不取)),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하지 못할 짓이 없다(불치즉무소불위不(恥則無所不爲))”라고 했다. 지금 우리 통치자와 그 일당들이 딱 이렇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하는 명구가 아닐 수 없다.
<시경>에 보면 이런 시가 나온다. “불괴우인(不愧于人) 불외우천(不畏于天)-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하늘조차 무섭지 않다.”
사람으로서 언행이 정정당당하고 떳떳하면 그 무엇도 무서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자신이 정당하면 설사 일이 잘못되거나 뜻한 대로 풀리지 않아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 탓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옛 선현들은 ‘괴(愧)’라는 글자를 척도로 삼아 자신의 언행을 점검하곤 했다. 지식인이나 공직자는 특히 그랬다. 심지어 ‘괴’를 문명의 척도로까지 생각하여 이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계와 차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 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참으로 소중한 동양적 가치이자 전통이 아닐 수 없다. 김영수(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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