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료원에서 영화 ‘전함 포템킨’을 봤다. 1925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작이니 92년 전 작품이다. 하지만 화면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수사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긴장과 서스펜스 속에서도 때로는 화면이 숨 막힐 듯 서정적이었다. 빛과 어둠이 춤추고 노래하는 시였다. 흑백 매력의 극한이었고 기하학적인 추상미가 무엇인지도 보여주었다. 그만큼 현대적이기도 했다.
특히 절정 장면에서는 더없이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했다. 오데사의 계단 장면이 대표적이다. 계단을 점령한 무수한 비무장 군중을 향한 무자비한 발포. 충격과 혼란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인물들의 클로즈업된 표정. 그리고 공포에 질린 젊은 여인과 유모차의 아기. 마침내 어머니는 총에 맞아 쓰러지고 유모차는 춤추듯 계단을 굴러 내려간다.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짧은 숏과 숏의 끊임없는 부딪침. 영화뿐 아니라 시에도 아주 잘 어울릴 기법이다.
이 같은 기법에 힘입어 비록 무성영화였지만 너무나 강렬하게 너무나 많은 말을 했다. 말없는 말의 궁극이었다. 75분 내내 영화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보통 무성영화라 해도 혹시 변사는 없을지라도 음악은 언제나 따랐던 것 같다. 채플린의 무성영화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번 영상자료원 영화는 아무런 음악조차 없는 말 그대로 소리 없음이었다. 그런데 내용은 더없이 선동적이고 불온한 영화였다. 처음 얼마간은 이 기묘한 부조화가 매우 낯설고 이상했다.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뜨겁게 외치는데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총알이 날아가고 사람이 쓰러져도 소리는 여전히 완전 차단이었다. 반대로 화면은 찢겨 나올 듯 격렬했다. 마치 아무런 간도 하지 않은 날고기를 삼키는 것처럼 거북하고 어색했다. 잠시 무한의 시간이 흐른 것 같기도 했다. 소리가 없으면 시간이 잘 흐르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흡사 주술에 걸린 듯 곧 영화에 빠져들었다. 워낙 몰입하여 뼈와 살에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잊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황경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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