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구 직원의 무표정한 얼굴이 밉다. 그가 말한 대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빨간 불이 깜박이는 기기 위에 올려놓는다. 지문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손가락을 더 위로 올려 누르라고 한다. 조금 올리고 꾹 누른다. 그래도 안 나오는지 이제 차라리 아래로 내리란다.
“좀 더 아래로…. 너무 닳아서 안 되겠네요!”라면서 까만 물기가 있는 스탬프를 앞에 내놓는다. 지문이 나오지 않는 죄로 엄지손가락을 스탬프에 눌러 까맣게 묻힌다. 인감발부대장에 찍은 지문은, 어려운 미로 찾기를 하는 그림처럼 선명하게 잘만 보인다.
지문 감식기가 지문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기기의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냥 씩 웃는다. 얼굴은 웃었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언짢다. “닳아서 안 나온다!” 더 오랜 세월이 지나면 아예 지문이 없어져버릴까. 어디다 대고 좀 투덜대고 싶다.
임차인이 전세등기를 하겠다고 했었다. 성가신 일이지만 당연히 인감을 발부해주어야 하고, 스스로 닳아 엷어져가는 지문까지 확인해야 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침 일찍 해치우는 게 하루가 시원하다. 서둘러 나갔다가 온몸으로 시험을 본 기분이다. 기기에는 엄지손가락만 댔지만 몸뚱이 전체가 기기 위에 놓인 것 같았다.
나이 들수록 그윽한 향을 내며 고고한 모습으로 늙어갈 수는 없을까.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게 스스로 못마땅하다. 무엇이든 오래되면 닳게 마련 아닌가. 육신이 닳아 지문이 엷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지문 닳은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기면서, 째까닥거리며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던 소리를 기억한다. 그때는 또박또박 천천히 지나가는 소리였다. 이후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나 싶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살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바람결에 날아가는 저 소리, 한참 지문이 닳은 자들만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최종(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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