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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두 부류의 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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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06 10:25:48   폰트크기 변경      

지난해에는 유난히 태풍이 많았다. 이로 인해 경상도 지역 피해가 컸다고 한다. 가고 나면 다시 불어오고, 가고 나면 또 다시 불어오고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내가 사는 충청도 지역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추수를 앞둔 벼들이 쓰러진 것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때 고향마을에는 두 부류의 아버지들이 있었다. 한 부류는 자식들의 등교도 막고 모든 식구가 헌신적으로 벼를 세우게 하는 가장들이었다. 이런 아버지를 둔 가정은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만큼 더 소출을 늘릴 수 있었고 얼마간의 가정형편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집의 자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업을 이어받아 농업에 종사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그들 가정은 농토를 지켜야 했고 부모와 함께 2대가 같이 고향지킴이로 평생을 살았다.

또 한 부류는 휴일에는 온 식구가 논으로 나가지만 평일에는 어떻게든 자식들을 학교로 보내는 가장이었다. 이런 아버지를 둔 가정은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고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농토를 결국 팔고 말았다. 대학교육을 시키기 위해 도시로 유학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세월은 유구하나 그 세월을 살아가는 각자의 삶에는 부침이 있는 법, 고향땅을 지킨 자녀들은 가난한 신분을 상속받았다고 여겼으나 틀린 경우도 많았다. 엄청난 땅값의 상승으로 결국은 커다란 부를 이뤄 신분상승을 이룬 사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해 손에서 호미를 놓게 된 자식들 또한 신분상승을 했다고 믿었지만 틀린 경우도 많았다. 평생을 자기 집 마련하는 정도의 삶이 전부인 사람은 농업에 종사하나 직장생활을 하나 종류만 다를 뿐 그게 그거라서 그렇다.

아무려나 삶은 선택이다. 어느 순간에 큰 부를 이뤘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가난해지기도 하는 것, 복이 많아 평생을 여유롭게 살았다 한들 3대가 부와 신분을 물려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연 어떤 삶이 더 바람직한가는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마치 저 태풍의 생성과 소멸처럼 인간의 삶 또한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아닐까.

 

백두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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