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마음이 창] 내 믿음이 깊다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0-02-27 06:00:15   폰트크기 변경      

 무인도에 갈 때 딱 세 가지만 챙기라면 뭐 가지고 갈래? 하는 얘기가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다. 어떤 여성 방송인은 책과 커피와 음악이라고 했던 것 같다. 오래전에 들은 것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참 낭만적인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난 너무 현실적인지, 그럴 일이 생긴다면 딱 한 사람만 챙겨 떠날 것이다.


  30년 째 단독주택에 사는 동안 집은 점점 낡아가고 못 하나 박는 일에도 나는 그를 쳐다봤다. 갑자기 전깃불이 나가거나 하수도관이 막힐 때, 심지어 전자제품이 고장 나도 그를 불러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놀랍게 해결 능력을 발휘했다. 물론 처음엔 수리공들을 불렀지만 출장비가 만만치 않자 그는 직접 수리를 하기 시작했고 점차 칼 하나로 뭐든 다 해내는 그 유명한 맥가이버 손이 되어갔다.


“난 무인도에 갈 땐 딱 자기만 있음 돼. 셋이 뭐야, 백가지도 더 챙긴 것이나 같을 텐데. 흐흐” 시커먼 먼지가 묻은 그의 손을 만지며 코맹맹이 소리를 하면 씩, 웃는다. 그는 무인도에서도 어떻게든 불을 피우고, 집도 지을 것이다. 우물을 파서 맑은 물을 마시게 해 줄 것이며 얘기를 잘 하니 책이 없어도 심심치 않을 것이다. 짐승들을 막아 줄 것이고 바람소리, 파도소리에 맞춰 못 부르는 노래도 불러 주지 않을까. 내 믿음이 깊다.


  맥가이버나 무인도 타령을 하며 수리비를 아끼려는 내 속셈을 진즉에 알아챘겠지만 그는 오래된 집과 가족의 웬만한 문제들은 다 해결해 준다. 묵은 담벼락에 그려 준 푸른 바다와 붉은 등대, 갈매기는 이웃의 이웃이 되기도 한다. 늘 좋아하는 척, 못이기는 척, 흠흠 콧노래도 부르는 그의 속내를 실은 알 수 없다. 무인도에 갈 때 뭘 갖고 갈 것이냐는 물음에 아직 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챙긴대도 상관없다. 나는 내 맥가이버만 챙기면 되니까.

 

권애숙 (시인)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