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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창] 시장과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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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4 06:00:09   폰트크기 변경      

 동창 모임 장소를 연락받았습니다. 전통시장 안에 있는 식당이랍니다. 그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푸성귀를 늘어 놓은 인도는 물론이고 시장 들머리는 북새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일을 놓고 파는 트럭, 잡동사니를 싣고 오가는 손수레, 짐수레를 끄는 오토바이, 확성기와 사람들의 왜자한 소리가 뒤엉켜 있습니다.


 가끔 이런 시장에 들르곤 합니다. 일상이 권태롭고 허허로울 때는 왁자한 먹자골목이나 욕설이 오가는 선술집에 들어 왕대포를 한잔하거나, 시장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생기를 되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생선 가게 골목에서 비린 냄새를 맡으면 생의 의욕이 북돋워 오르기도 하지요.
 뒤미처 도착한 친구들과 방에서 안부를 나눈 후 잠시 뜸을 들이고 있습니다. 아, 근데 이게 무슨 생경한 풍경입니까. 건너편 벽에 걸린 달력이 눈길을 붙잡습니다. 그곳엔 드넓은 광야가 한가득 펼쳐져 있습니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메마르고 거친 땅을 찍어 놓은 사진입니다. 시장 분위기와 사진은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시끌벅적한 시장과 적막한 광야의 묘한 대비입니다.


 차츰 나름대로 실마리를 풀어봅니다. 광야는 시장과 반대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하고 거친 곳이며 메마름뿐인 땅이 아닌가요. 먹을거리와 물도 없는 척박한 곳에 광야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광야는 꼭 필요한 것이 새롭게 인식되는 절박한 땅이기도 하고요. 결국 자신에게 가는 길만 남아 있을 뿐, 눈 돌릴 곳이 없을 테니까요. 삶에서 진정 필요한 것이, 가치 있고 소중한 게 정작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처소이기도 하겠지요.
 달력이야 식당 주인이 걸었겠지요. 한데 시장 안에 이런 광야를 들여앉힌 그 마음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루에 몇 분이라도, 한 달에 하루라도, 일 년에 며칠이라도 삶의 한복판에 광야 한 자락 끌어들이라는 전언일까요. 사진 속의 광야를 바라보며 기꺼이 소주 몇 잔을 흔흔히 들이킵니다. 어떤 안주보다 더 낫습니다.

 

정태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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