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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꽃이 피기 시작했다.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린 열매들 사이로 수수하게 피고 있는 차꽃은 참 음전하다. 차꽃이 핀다는 건 가을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밭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에 차나무를 심고 가꾼 지 몇 년 만에 녹색 차밭길을 얻게 되었다. 우윳빛 차꽃에 코를 들이밀고 향내를 맡는다. 꿀내음이 은근하다. 달큰한 꽃들을 따서 꽃차를 만들까, 통통한 열매들을 따서 기름을 낼까, 기분 좋은 생각으로 걸음이 더디다. 산까치들도 시끄럽다.
익숙한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산자락 아래 농막을 짓고 홀로 기거하는 분이시다. 그 분은 늘 귀를 밖으로 열어놓는지 우리가 도착하는 것을 금방 안다. 차 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나와 반기거나 연주를 해준다. 어느 땐 색소폰을, 어느 땐 기타를, 또 어느 땐 하모니카로 골짜기를 들뜨게 한다. 가끔 우린 잘 익은 술병이나 과일 봉지를 들고 그분에게 간다.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어울린다.
변두리 산자락에 작은 텃밭을 구한 건 남편이 퇴직을 하고 3년 쯤 지나서였다. 평생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손을 놓게 되니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어 했다.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론 성에 안차는지 다른 소일거리가 있는 게 좋겠다며 생각해낸 게 흙을 만지는 거였다. 오래 버려둔 듯한 땅을 구한 다음 날부터 신이 나서 뚝딱거렸다. 허술하지만 원두막을 짓고 복숭아나무 아래 식탁을 앉혀 쉼터도 만들었다.
우린 이 골짜기를 ‘복사골’이라 부른다. 복숭아나무가 여러 그루 있기도 하지만 매화꽃 살구꽃 복사꽃 감꽃들이 줄 지어 피니 고향인 듯 스며들어 위안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삼이웃 밭주인들도 비슷한 형편이다. 아래 위 밭둑을 건너다니며 서로 마음을 나눈다. 그동안 한 분이 세상을 떠나 남은 이들을 슬프게 했지만 그분 아들이 합쳐 다시 활력을 보탰다. 지금 복사골이 달달하다. 골골마다 가을이 익고 사람들도 깊어 간다. 흙이 답이다.
권 애 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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