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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포기가 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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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04 07:00:17   폰트크기 변경      

 

   

 작년 봄, 나는 자매를 잃었다. 그녀가 떠난 후 집 안에 있는 화분들이 말라죽기 시작했다. 알아서 잘 자라던 화분들이 별안간 뿌리까지 죽어버렸다. 남루하지만 매년 풍작이었던 내 작은 텃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조랑조랑 매달렸던 감나무에는 감이 반도 열리지 않았다. 안주인이 아프면 장(醬)이 상한다던 옛말이 떠올랐다.

 

 남은 퇴비가 있어서 올가을에 다시 텃밭을 시작해볼 요량으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 매년 갈던 땅이 아니었다. 메마르고 딱딱했다. 그 많던 지렁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농작물들을 수확하지 않고 버려두었던 터라 곳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지지대에는 말라비틀어진 고추와 썩은 오이가 주검처럼 매달려 있었다.

 

 결국, 손을 놓고 말았다. 내 방치로 인해 땅도 식물도 죽어버렸지만, 이미 죽은 걸 살릴 수도 없었다. 다시는 살아있는 걸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어쩌면 텃밭은 핑계였을 것이다. 초록의 생명을 다시 보고 만지면서 내게도 생의 의욕을 불어넣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평소 하지 않던 걸 하고 말았다. ‘포기’란 것.

 

 그 단어를 극도로 싫어하며 살았다. 내 생애 포기란 없었다. 죽거나 까무러쳐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큰 노력 없이 텃밭을 포기한 이유는 상실을 겪은 후 그 단어에 대한 강박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꿈, 사랑, 성공. 포기하지 않는다고 다 이루는 건 아니겠지만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 기회와 기적이 더 많이 찾아갈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론 나의 포기가 다른 존재에게 주는 기회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잡풀로 무성한 텃밭에서 고라니 두 마리가 노닐다가 말뚝을 넘어가는 걸 보았다. 길고양이가 어린 새끼를 품고 앉아 있기도 했다. 우리 마을에서 방치된 텃밭은 우리 집밖에 없었다. 버려진 땅이 어떤 여린 존재들에겐 안전한 쉼터가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포기와 상실이 준 귀한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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