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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걷다가 졸참나무 한 그루에 눈길이 머문다. 잎과 도토리는 장기의 졸卒과 같이 작다 하여 그리 부르는 모양이다. 열매의 생김새를 보고 이름 붙인 나무가 한둘이던가. 열매가 장구 모양 같다 하여 장구밥나무, 둥글고 반질반질하여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중대가리나무, 쥐똥 모양 같다 하여 쥐똥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가을을 맞아 헐벗은 탓인지 수척해 보이나 대신 작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외진 숲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꾼 덩어리가 도토리가 되었을까. 녹음 속에서 도토리를 잉태하여, 소쩍새 울음소리에 움을 틔우고 새순을 뽑아, 가을 햇볕에 열매를 여물게 하였으리라.
참나무 종류 중에서는 가장 작을 성싶다. 하나 열매로 빚은 묵은 찰기가 많아 맛이 부드러우며, 약재로까지 쓰여 제구실을 톡톡히 한다. 흉년이 들면 저 스스로 열매를 더 많이 맺는다니 참으로 가상한 나무가 아닌가. 겉만 보고 속을 짐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봄여름엔 푸름과 녹음에 가려 나무의 특징이 잘 분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그 나무의 수형과 진가가 오롯이 드러나 생장 과정을 고스란히 알 수 있다. 또 그가 남긴 열매를 보면 그 쓰임새를 짐작할 수가 있고, 단풍을 보면 그 나무의 속성 또한 알 수 있지 않던가. 졸참나무의 개결하고 깔밋한 단풍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맑게 채색해 준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누구든 나무처럼 제 속살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가 살아온 뼈대와 일궈온 색깔을 엿볼 수 있다. 내 가을은 어떤 모습과 색깔일까. 졸참나무를 보며 올 한해에도 생의 갈피를 되작여 본다. 속 빈 강정이니, 빛 좋은 개살구니 하는 말만은 면해야 할 텐데.
정태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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