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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손 흔드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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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11 07:00:12   폰트크기 변경      
   

어쩌다 산책길에 아랫집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터울이 제법 있는 어린 형제는 나를 이모라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먼발치에서 나를 발견하는 날에는 작은 손을 허공에 쭉 뻗어서 세차게 흔들어대곤 했다. 봄날엔 벚꽃 같고 가을엔 코스모스 같은 예쁜 손이 나를 향해 흔들리는 그 순간이 참 좋다.

땅거미가 질 무렵 산책하러 나갔다.

 

 가을바람에 세상 모든 여린 것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고 달리는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흰 티셔츠를 입고 멀리서 걸어가던 두 사람이 자꾸 나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둘 중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고는 열심히 흔드는 게 보였다. 아, 꼬맹이 형제구나. 나는 두 손을 교차해 흔들며 형제들이 걸었던 길을 즐겁게 걸어갔다.

 

 커브 길을 막 돌아서고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꼬맹이 형제가 아닌 어른이었고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는 걸.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를 기다린 듯 머뭇거리며 서 있던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쥐구멍은 없었고 쥐구멍이 있더라도 도망가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민망한 상황에서 태연해지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들도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발길을 재촉하는데 한 사람이 나를 불러세웠다. 모른 채 가버릴까? 갈등하다가 뒤돌아보았더니, 나만큼 얼굴이 달아오른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아는 동생인 줄 알고 아까 손을 흔들었는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제야 내 얼굴은 평온을 되찾았다. 우린 서로 아는 존재인 줄 알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지만, 알고 보니 완벽한 타인이었다. 때로는 실수나 오해로도 인연이 생기곤 한다. 우리는 길에서 만나면 손 흔드는 사이가 되었다. 봄날엔 벚꽃 같고 가을엔 코스모스 같은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또 생겼다.

 

이은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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