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마음의 창] 비탈을 아는 발바닥들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0-11-13 07:00:10   폰트크기 변경      
   

변두리 산동네는 따로 시계가 필요 없다. 산에서 내려온 새소리, 멀리서 짖는 개소리, 물건을 팔러온 트럭소리들이 시간을 만들고 계절을 만든다. 나는 천천히 골목을 돌아다니며 기웃거리길 좋아한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빈집들이 늘고 있다. 낮은 담 너머에선 나무와 풀꽃들이 조용하게 그러나 다부지게 빈집을 지키고 있다. 내려앉는 대문 곁에, 막힌 하수구 곁에, 마른 개똥 곁에, 필 때도 질 때도 이름이 무슨 소용이냐는 듯. ‘사는 건 이런 것’이라는 듯.

 

 “안녕하세요?” 집으로 돌아가던 유치원생 둘이 나를 알아보고 초승달처럼 달려온다. “아유, 예뻐라. 오늘도 신나고 즐거웠어요?” 조금의 얼룩도 없이 반짝거리는 녀석들에게 두 손을 들어 흔들며 윙크를 해준다. 누군가 떠난 자리엔 또 누군가 꼬물꼬물 그 빈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그렇게 역사는 만들어지고 쌓이며 한 시대를 아름답게 아프게 엮어가지 않던가.

 

 산동네는 도심보다 먼저 계절이 온다. 더위도 추위도 먼저 들이닥친다. 벌써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 같다. 오래전 문을 닫은 삼거리 가게 앞에 어르신 서넛이 모여앉아 옹기종기 햇빛바라기를 한다. 누군가 내다드린 주전부리를 하며 골목을 구르는 낙엽보다 더 누렇게 말라 버석거린다. 저물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온통 지나간 시간들뿐이다. 여기까지 이르게 한 숱한 사연들을 소환해 추워지는 골목을 따뜻하게 데운다. 아득한 그리움의 힘이다.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만’ 복지관에 다니는 이웃집 어르신이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다. 볼륨을 한껏 올린 그의 라디오소리에 적막하던 오후의 동네가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만들며 사는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를 도모하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다. 나나 당신에게나 어김없이 들이닥칠 해거름. 비탈길을 오르고 내려가는 소리 뜨겁게 번진다. 가파른 비탈을 아는 발바닥들은 무겁지만 단단하다. 바닥까지 후끈거릴 줄 안다.

 

권애숙 (시인)



〈e대한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