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마음의 창] 하늘 구멍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0-11-16 07:00:24   폰트크기 변경      
   

몇 년 전, 유화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극사실 화풍인 강사 선생님은 ‘고요한 숲’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여러 번 하신 분이었다. 자연히 습작으로 숲을 많이 그렸다. 하지만 초보 화가의 엉성한 붓질 끝에 다 그렸다고 내어놓은 그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선생님은 보기에 답답했던지 슬그머니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는 캔버스에 가득 찬 나무 무더기의 가장자리 윤곽을 살려가며 하늘색 점을 찍었다. 단지 크고 작은 점 몇 개를 찍었을 뿐인데, 하늘이 보이고 빛과 공기가 통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데 있는 나무와 뒤에 선 나무가 확연히 구별되었다. 누워 있던 목재가 살아 있는 나무로 거듭난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 찍은 점이 하늘 구멍이었다. 화가의 숲에는 나무와 덤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품고 있는 푸른 하늘, 숲을 통과하는 빛이 있어야 생명력을 얻게 된다. 거기에 자연을 사랑하는 화가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테다.

 

 하늘 구멍은 빛의 반사로 생긴 녹색의 그림자와 농담(濃淡),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고려하여 적당한 명도로 그려야 한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저 혼자 따로 튀어서는 안 된다. 하늘 구멍이 너무 많으면 포토샵을 지나치게 한 인물사진처럼 흉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늘 구멍만으로 훌륭한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바탕이 되는 숲을 충실하게 그려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도 하늘 구멍 같은 소통의 창구가 필요하지만, 아래위가 꽉 막힌 숲속처럼 깜깜하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다. 배려, 희생, 봉사와 같은 커다란 하늘 구멍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부 싸움 끝에 내가 먼저 건네는 ‘미안해’ 한마디, 이웃에게 거는 안부 전화 한 통이 ‘고요한 숲’의 소중한 하늘 구멍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이섭(수필가)



〈e대한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