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마음의 창] 파도가 묻는 말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0-11-18 07:00:15   폰트크기 변경      
   

 

 

 차를 몰아 근처 바닷가에 왔다. 백사장에 세 사람이 있다. 부부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남자,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 가족일 것이다. 여자의 배가 볼록한 것을 보니 셋이 아니라 넷이겠구나. 아이가 뛰기 시작한다. 남자가 뛰는 척 천천히 아이 뒤를 쫓는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여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배속 아기도 까르륵 웃고 있을 것 같다. 눈부신 가을 햇살과 잔잔한 파도 소리가 네 사람을 감싼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보며 나는 목이 멘다.

 

 근처 커피 가게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포장 구매했다. 차로 돌아가는 사이 세 사람, 아니 네 사람이 주차장 쪽으로 올라온다. 높은 계단 위로 작은 다리를 올린 채 안간힘을 쓰는 아이의 손을 남자가 잡아준다. 아이가 먼저 올라온 후 남자는 여자의 손을 당긴다. 아니, 두 사람을 한꺼번에 끌어올린다. 손에 들고 있는 커피만큼 뜨거울 남자의 손을 가만히 바라본다.

 

 누구나 한때는 뜨거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뜨거운 손으로 예정하는 이의 손을 붙잡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자신의 뜨거움이 상대를 데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하필 그땐 몰랐던 우리는 뜨거운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아가며 늙는지도 모르겠다. 온도를 조절할 줄 알게 되었을 무렵엔 후회와 아쉬움만이 남을 뿐, 미지근한 관계 속에서 미지근하게 살아갈 뿐.

 

 주차장 건너편 벤치에 할아버지가 혼자 앉아있다. 몹시 추워 보인다.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던 할아버지 쪽으로 누군가 다가간다. 할아버지보다 훨씬 노쇠해 보이는 할머니가 옆에 앉는다. 보온병에서 보온병 뚜껑으로 무언가가 쏟아진다. 할머니는 뚜껑을 할아버지에게 전달한다. 말없이 받아든 할아버지가 뚜껑을 입에 댄다. 두 사람은 함께 바다를 바라본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보며 나는 다시 목이 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짧게 뜨거워지고 싶은지 길게 미지근해지고 싶은지 파도가 묻는다.

 

이은정 (소설가)



〈e대한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