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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길 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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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19 07:00:14   폰트크기 변경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서 있는 골목길. 두 사내가 앞서 나란히 걷고 있다. 흰 지팡이를 두드리는 사내 왼팔에 한 사내가 매달려 간다. 왼팔 사내는 지팡이를 접어 옆구리에 낀 채다.

 

 왼팔 사내는 흰 지팡이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십 초반쯤 돼 보인다. 흰 지팡이는 보라색 점퍼를 입고 있고, 왼팔 사내는 감색 양복에 흰 운동화를 신고 있다. 흰 지팡이는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면서도 걸음걸이가 재바르고, 왼팔 사내는 흰 지팡이의 팔에 매달려 종종걸음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발소리를 죽여 가며 그들 뒤를 따른다.

 

 - 잘해야 해, 오늘은. 저번처럼 하면 안 된단 말이야.

흰 지팡이가 다그치자 왼팔 사내는 헛기침하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 형이 말을 더듬는 통에 일이 다 깨졌지 뭐야. 우린 귀가 눈이야.

흰 지팡이는 앵하다는 듯 되새긴다. 왼팔 사내가 말을 얼른 바꾼다.

 

 - 오랜만이라 양복이 영 어색하구만.

 

 -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피차 안 보인다고 대충 입고 가면 또 퇴짜야. 손은 무릎 위에 둬. 접때처럼 더듬거리다가 물잔 넘어뜨리지 말고.

흰 지팡이는 왼팔 사내를 또 다그친다.

 

 - 허긴 목청이 참 곱더라. 얼굴도 예뻤겠지?

 왼팔 사내의 말투엔 아쉬움이 묻어난다. 두 목소리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은행나무 가지에 걸려 반짝인다. 긴장했는지 왼팔 사내의 등은 약간 굳어 보인다. 골목길을 벗어나 한길 가로 접어든다. 두 사람은 오른편 차도가 있는 쪽을 향해 방향을 튼다. 난 왼쪽으로 걷다가 뒤돌아 그들을 바라본다. 또 맞선을 보러 가는 걸까. 좋은 일은 길 위에서 준비한다는데, 오늘은 왼팔 사내에게 축복의 길이 있어라.

 

정 태 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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