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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모임에서 연장자분이 회원 앞앞이 선물을 돌렸다. 포장된 박스에는 ‘들기름&참기름’이라고 쓰인 라벨이 선명했다. 박스를 열어 보니 기름 한 병과 참깨가 투명한 병에 담겨 있었다.
나는 참깨가 든 병이 있으니, 다른 병이야 당연히 들기름이거니 생각했다. 바깥에 오래 있다 들어와서 목이 칼칼하던 차에 들기름을 한 숟갈 넉넉하게 부어 입에 넣었다. 그런데 맛과 목 넘김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나는 후각이 둔한지라, 냄새 맡는 데는 일가견 있는 아내에게 이게 참기름인가 들기름인가 물었다. 아내는 냄새가 고소한 걸 보니 참기름 같다면서도 맛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아내가 마치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한 것처럼 작업실 방문을 화들짝 열었다. 인터넷으로 참기름과 들기름 구별법을 검색하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맛이 고소하면 참기름이고, 고시하면 들기름입니다.” “참기름은 참 고소하고, 들기름은 덜 고소합니다.” “불빛에 비춰봐서 맑으면 참기름이고, 흐릿하면 들기름이라예.”
그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이것이었다. “빨간 뚜껑이면 참기름이고, 파란 뚜껑이면 들기름입니다.” 이 글을 쓴 이가 사는 마을 장터 기름집에서는 참기름 담은 병은 빨간 뚜껑으로, 들기름은 파란 뚜껑을 마개로 쓰는 모양이었다. 우스개로 올린 말이겠지만, 참깨 들깨만 한 조그만 일에도 이렇게 의견이 다채로운 데 나랏일이야 오죽하랴 싶었다.
선물 받은 기름이 무슨 기름이었냐고요? 참기름이었습니다. 단체 카톡에 “참기름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답글이 많이 올라왔거든요. 그러나 들기름으로 알고 먹어버린 제 판단이 틀렸는지는 기름을 다 먹어 버린 지금까지 아리송합니다. 그때 그 병뚜껑 색깔은 기억나지 않지만, 안에 든 기름은 불빛에 비춰 봤을 때 약간 흐릿했고 맛도 고시했다니까요.
조이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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