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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어쩔 수 없는 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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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25 07:00:11   폰트크기 변경      
   

 

 

 작은 골목 입구에 어른들이 서 있었다. 골목 안쪽을 주시하며 선 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낸 정체는 커다란 흑염소와 주인아저씨였다. 아저씨는 흑염소 목에 걸린 목줄을 두 손으로 힘껏 끌어당겼고 흑염소는 저항하듯 뒷걸음질 쳤다. 트럭 한 대가 도착했고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화물칸을 오픈한 뒤 허겁지겁 흑염소가 있는 쪽으로 달렸다. 성인 남자 둘이서 잡아끄는 데도 힘에 부쳐 보였다. 문제는 화물칸 위로 흑염소를 올리는 일이었다. 네 다리를 땅에 밀착시킨 채 거칠게 제 목을 흔드는 흑염소는 하늘이 찢기도록 절규했다. 그러나 결국 화물칸 위로 올려졌고 화물처럼 밧줄에 꽁꽁 싸매졌다. 그 과정을 두 번 거쳐 두 마리의 흑염소가 트럭 위에 서 있었다. 반항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체념한 듯 커다란 눈만 끔뻑거리며.

 

 팔려가는 거냐고 내가 물었더니, 그렇다고 이웃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수놈 두 마리만, 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아주머니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 가는지 아는 거야. 짐승도 아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트럭 위에 있는 흑염소 두 마리를 한참 쳐다보았다. 아는 눈빛이란 저런 것이구나. 체념이란 저런 눈빛이구나. 난생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두 생명을 실은 트럭이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곱게 물든 낙엽들이 트럭의 속도로 공중에 흩날렸다.

 

 골목에서부터 흑염소를 억지로 끌고 나왔던, 애지중지 방목해서 키웠던 아저씨가 시멘트 바닥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담배를 물고 있었던가.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마도 그 역시 아는 눈빛이었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보내는 자의 눈빛이었겠지. 아저씨 머리 위에도 낙엽들이 내려앉았다. 봄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꽃이 아니라 낙엽이라서 어쩌면 다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은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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