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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공중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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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30 07:00:13   폰트크기 변경      
   

 

 

 가을비가 내린다. 물방울이 통유리창에 열두 줄 주렴을 드리운다. 구슬이 또르르 또 또르르 흘러내리지만, 이중창이 소거해버린 빗소리는 눈으로만 들을 수 있다.

 

 빗줄기 사이로 비둘기 두 마리가 힘겹게 날갯짓한다. 큰 유리창을 캔버스 삼아 좌상향으로 십오도 각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한 층 한 층 비스듬히 오르며 두리번거려보아도 마땅히 날개 접어 쉴 데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사는 층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아파트 동(棟)과 동(棟) 사이 허리춤을 감싸 돌며 사라진다. 이렇듯 나는 공중에 누각을 짓고 사는 셈이다.

 

 비둘기도 이러한데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는 오죽하랴. 은행나무가 아무리 힘들여 물기와 영양을 자아올려도 여기까지 닿지 않는다. 그래서 달빛 묻은 넉넉한 이파리로 창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며 나에게 어험스레 말을 걸 수도 없다. 비둘기와 나무는 생명의 기운이 미치지 못하는 공중누각에서 바짝 마른 압화(押花)를 벽에 걸어두고 사는 나를 부러워할까. 여기에서는 가을이 되어도 가랑잎 구르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나무가 바람과 어울려 손잡고 춤추는 것도 볼 수 없는데.

 

 어릴 적,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리면 빈집에 남은 나는 세숫대야나 그릇을 찾아 방 여기저기 갖다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마당에 팬 웅덩이의 물이 부서지고 아무는 모양을 들창으로 내다보았다. 문득 눈길이 호박 넝쿨 걸린 담 밑에 머무르면, 무더기무더기 핀 꽃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리잠직한 채송화는 가냘픈 손을 내밀어 살랑살랑 흔들었다. 우리는 눈물 자국이 마를 때까지 가만가만 사랑을 나누었다.

 

 오늘은 젖은 김처럼 새까만 아스팔트 포도(鋪道) 위에서 스며들 틈을 찾아 헤매는 소리 없는 도시의 도랑을 맥 놓고 내려다본다.

 

 조이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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