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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 호숫가 가을 속으로 나들이를 나선다. 타관살이하다 모처럼 집에 온 막내 녀석과 밥도 함께 먹을 겸해서다. 조수석에 앉은 녀석과 뒷좌석에 앉은 엄마, 녀석의 뒤통수에 대고 엄마의 미주알고주알 캐묻고 당부하는 말이 실타래 풀듯 끊이질 않는다. 그때마다 녀석은 예 예, 하고 대담은 잘도 이어진다.
“잘 듣고 있느냐?”
“아 예, 근데 방금 뭐라 하셨는데요?”
“내 그런 줄 알았다.”
“아니, 어떻게 아세요?”
“내 속으로 너를 낳았는데 니놈 속을 왜 모르겠느냐.”
녀석은 엄마가 하는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누군가와 손전화로 문자를 열심히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당부의 말은 또 이어지자, 녀석은 그제야 하던 짓을 멈추고 허리를 곧추세워 뒤쪽으로 귀를 세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어머니가 시루에 콩을 안쳐 키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시루에 물 빠짐이 좋은 성긴 헝겊을 깔고 태운 볏짚을 깐 다음 그 위에 불린 콩을 안쳤다. 콩나물 머리가 파래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검은 천을 덮은 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물을 주었다. 콩나물시루는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주는 물이 그대로 흘러내리지만 그래도 콩나물은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십여 일이 지나자 콩나물은 식탁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자라나 있었다. 밑으로 흘러내릴지언정 물을 자주 주다 보면 뿌리가 물을 조금씩 흡수한 터였다.
옴니암니 입이 닳도록 해대는 부모의 말을 자식들은 잔소리라 여겨 쉽게 흘려버린다. 그래도 부모는 그 말이 은연중에 자식의 가슴께로 또르르 스며들어 속심이 자라리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는다. 밑 빠진 시루에 물을 부어 기르는 콩나물처럼, 자식들도 부모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시나브로 자라나는 모양이다.
정태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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