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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자리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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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04 07:00:23   폰트크기 변경      
   

 

 “말씀 낮추세요.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꼬박꼬박 존칭을 쓰는 내게 어느 날 후배가 그랬습니다. 나는 아주 잠깐 머뭇거렸지요. “좋아.” 하는 순간 진짜 언니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요. 상대적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위치는 그만큼 책임감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나름대로 예의를 차려 배려한다고 해도 격의 없이 지내다보면 자칫 오해도 생길 수 있고 돌이킬 수 없이 틀어지거나 소원해질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막내의 자리를 누리던 나는 일곱 살에 고모가 되었습니다. ‘고모’라는 위치는 형제자매의 자리완 다릅니다. 엄마와 동격이니까요. 싸워서도 토라져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너그럽게 양보하고 배려해야만 하지요.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고 무거운 자리였습니다. 그런 환경 탓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부르고 불리는 호칭에 대해 민감한 편입니다. 그 호칭이 주는 무게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이들 중에 ‘언니’나 ‘누나’라고 불러주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들은 나이가 좀 더 많은 나를 그냥 친근하게 부르겠지만 불리는 나는 고마운 만큼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내게 ‘호형호제’는 혈육만큼이나 가까우며 믿고 아껴야한다는 뜻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좀 더 다정한 언니, 누나, 동생이 될까 즐거운 고민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나는 관계에 대해 늘 서툴고 엉성합니다.

 

 동서고금의 소설이나 영화 속 영웅들을 보면 의형제의 의리가 친형제 못지않습니다. 그들의 의협심은 서로를 돌보고 지킬 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지요. 세상이라는 험하고 고단한 강호에서 정으로 맺은 언니, 오빠, 동생들, 나는 당신들을 한없이 믿고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미운 투정 고운 투정도 부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우리 사이 흠집이라도 생기게 되면 받아들이기 힘들고 아프기도 하겠지만, 우려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권애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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