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혹시, TV 서랍장을 뒤지다가 귀퉁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나사못 서너 개가 눈에 띈다. 그중 하나를 갖다 맞혀보니 고정하기에 마땅하질 않은가. 방치되다시피 한 녹슨 나사못이 이리 쓸모가 있을 줄이야.
책상 서랍 속의 옷핀 하나가 소중한 적도 있고, 까마득히 방치된 클립 하나가 요긴하게 쓰인 때도 있다. 귀가 깨진 그릇이 또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하찮은 돌멩이조차 꼭 필요할 순간이 있다. 10원짜리 동전이 필요할 때도 있고, 말라비틀어진 굽은 나뭇가지가 쓰일 때도 있다. 창고에 밀쳐둔 화병이 꽃을 담아 거실을 밝히기도, 차 안의 몽당연필이 급히 무얼 기록하는데 소용되기도 한다.
당장은 쓸모가 없을지라도 어느 땐가는 제 역할을 한다. 잊혀가던 추억 한 조각이 고단한 생에 윤기를 불러오기도 하고, 책장 구석에 박혀 퇴색한 사진 한 장이 그리운 사람을 찾게 하기도 한다. 낡은 수첩에 남아 있는 전화번호 하나가 지난날을 소환해 마음을 설레게도 하고, 빛바랜 풍경 사진 한 장이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무심코 저지른 죄조차도 지나고 보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성찰하고 회개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죄지은 자라도 타인에게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천진한 어린아이의 무심한 행동이 어른을 뉘우치게 하고, 노인의 말 한마디가 젊은이의 인생을 바꾸게도 한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들이다. 하늘은 이 세상에 물건을 낼 때 의미 없는 것은 만들지 않았다. 잊히고 눈밖에 벗어난 것들이라 해서 쓸모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하물며 유정한 인간을 말해 무엇 하랴.
정태헌(수필가)
〈ⓒ e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