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백경민 기자] 건설엔지니어링 입찰제도가 하나 같이 제 기능을 못하는 데는 공정의 가치가 무너진 데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수사기관이 칼날을 꺼내들 정도의 사달이 나야 수그러들 것이란 비아냥까지 들릴 정도다.
입찰제도는 죄가 없다. 문제는 그 허점을 악용하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나 SOQ(기술인평가서) 모두 건설엔지니어링의 기술력 향상을 위해 태동했지만, 평가위원 정성평가를 유리한 방향으로 돌려세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면서 변질됐다.
공정의 가치를 다시 바로 세우려면 합리적인 평가 시스템 구축이 먼저다. 제대로 평가하고, 제대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
종심제만 해도 발주기관별로 평가 이후 사유서를 공개하고 있지만, 평가위원 또는 업체명을 가린다거나 평가항목과 위원별 심사평을 배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평가 사유를 탁월 또는 우수로 갈음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그나마 가장 투명하게 심사 결과를 공개하는 국가철도공단마저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업체별로 제시한 내용을 그대로 기재할 뿐 점수에 차등을 둔 이유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
큰 틀에서는 입찰제도의 혁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에 적용되는 확정가격 최상설계 방식이나 건축 분야 설계 공모 등을 건설엔지니어링에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국가계약법에 따른 경쟁적 대화에 의한 계약 방식 등도 거론된다. 이들 모두 기술력을 최우선 순위에 둔 입찰제도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PM(Project Management) 사업에 이 같은 입찰제도를 적용해 볼 만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PM은 사업 기획부터 시공 후 운영에 이르끼까지 발주자를 지원해 건설사업 전반을 관리하는 것이다. 사업 효율성 증대 및 업계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기존의 입찰제도로는 부작용을 답습할 우려가 크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대가 현실화를 오래도록 요구했는데, 합리적인 평가를 전제로 한다면 기술력을 최우선에 둔 입찰제도 도입을 고려할 만하다”며 “PM 사업에 이를 적극 활용하면 도입 취지에 걸맞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평가가 있는 한 전관 영입이나 로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어디까지나 합리적이고 투명한 평가가 전제돼야 하고, 업계도 사명감을 갖고 자정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경민 기자 w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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