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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영양 가득한 나물, 봄날 가기 전에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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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5-15 06:00:15   폰트크기 변경      
나물 덕에 식용식물 제일 많은 한국

생채ㆍ숙채ㆍ건채 다양한 조리법
생으로도 먹고ㆍ무치고ㆍ데치고ㆍ비비고


파주 ‘행복한밥상’의 나물반찬


만연한 봄인데 산과 들에 어찌 꽃만 피어날까. 봄나물이 돋아난다. 어느덧 나물의 계절이다.

식탁을 가만 들여다보면 계절이 보이는데 요즘은 여느 집 백반 상에 나물이 띈다. 소설가 김훈이 그랬다. ‘언 땅을 뚫고 가장 먼저 이 세상에 처음 엽록소를 내미는’ 쑥. 동토에 돋아난 그 쑥을 시작으로 요즘 맛과 향이 제대로 든 화원(花園)이 온천지에 펼쳐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을 가득 품고 비로소 돋아난 제철 나물이다. 비타민뿐 아니라 춘곤증과 감기 예방 등 영양학적으로도 계절 변화에 조화롭다.


하동 ‘지리산대박터고매감’의 나물 비빔밥


나물은 이른바 ‘채식의 끝판왕’이다. 구황에 연명했던 초근목피(草根木皮)다. 나물을 만들라치면 푸성귀의 잎사귀나 뿌리, 새순, 심지어 나무껍질까지 채취해야 했다. 먹을 것이 모자랐던 민초들이 목숨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생명초 역할을 한 것이 나물이다.

봄이면 산과 들에 머위, 시금치, 미나리, 고사리, 쑥, 냉이, 달래, 지칭개, 망초대 등이 올라오고 땅속에는 칡, 도라지, 우엉에 단맛이 든다. 나무엔 참두릅, 엄나무순(개두릅), 옻순, 참죽(가죽)이 돋아나고 가시오가피 껍질 등은 뜯고 벗겨 나물을 해 먹었다.

이리저리 모두 먹을 수 있는 것만 특별한 이름도 붙였다. 개망초, 유채, 숙주, 원추리, 엉겅퀴, 재쑥, 광대나물, 갈퀴나물, 세발나물, 씀바귀, 별꽃나물, 가시상추, 꽃다지, 고수, 돌나물, 참나물, 곰취…. 나물 종류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한반도 식물도감이다.


청도 한재 미나리


마땅한 곡식이 없을 때 나물로 주린 배를 채웠지만 역설적이게도 봄나물엔 영양이 아주 많다. 건강에 좋은 비타민과 섬유소가 많이 들었다. 요즘엔 아예 약초로 꼽는 것도 있다. 그래서 초근목피를 먹고도 당당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건강식을 내세우는 현대에 들어선 나물의 가치가 더욱 올라갔다. 외국에도 나물의 영양과 맛이 널리 알려졌다. 채식주의자였던 마이클 잭슨도 그랬다. 한국에 올라치면 나물비빔밥을 어김없이 챙겼다.


포천 ‘봄의정원’ 나물 반찬


나물은 한식 상차림의 구성요소 중 가장 두드러진 찬이다. 야생 채소라는 식재료로서의 특성과 채소를 무치는 조리법 모두를 ‘나물’의 범주에 넣는다. 온갖 식물과 해초 등을 볶거나 데친 다음 양념에 무친 음식(혹은 그대로 먹는다)이다. 그래서 한식의 특징을 나물에 두고 ‘손맛’이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한, 대부분 식물(해초 포함)이 나물 재료가 될 수 있으며 작물 중 주요 식용 부분이 아닌 잎사귀나 순, 대를 쓰기도 한다. 무청 시래기가 대표적이다. 알맹이 무는 무대로 썰어 무나물, 무생채 등을 하고 무청 시래기는 한번 삶아서 역시 나물을 한다.

고사리, 고구마줄기, 토란대 등은 줄기를 쓰는 경우다. 뿌리를 쓰는 경우도 있다. 도라지나 우엉은 뿌리만, 냉이와 달래는 잎사귀와 뿌리를 한꺼번에 무쳐 나물을 내기도 한다.

나물은 즉석조리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저장을 위해 조리하는 장아찌와는 구분된다.

서양 요리의 샐러드와 비슷하다. 나물은 한숨 죽인다는 것이 다르지만 채소에 기름과 간단한 양념을 해서 메인 디시와 함께 곁들인다는 점은 맥락을 같이한다. 샐러드에도 아스파라거스나 브로콜리처럼 데치는 경우도 있다. 허브 샐러드가 각광받듯 나물도 입맛을 당장 살려낼 만큼 향이 강한 것이 인기다.


서울 양평동 ‘또순이네’ 냉이된장


선조들은 소사채갱(疏食菜羹, 거친 밥과 나물 국)이라 하여, 나물을 청빈의 상징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음식이다. 주방에서 일하는 식솔에 많은 고생을 시켰다. 청렴한 선비가 박주산채(薄酒山菜, 거친 가양주에 산나물 안주)를 먹고 마시며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논한다니. 인건비가 비싼 요즘 같으면 택도 없는 소리다.

일단 캐온 나물의 흙을 털어 다듬고 억센 부위를 떼는 등 잔 손질이 간다. 억센 나물은 데치거나 기름을 두르고 살짝 볶아야 한다. 더 억세면 찧거나 아예 말려둬야 한다.

참기름과 들기름, 간장, 된장과 무치고 때에 따라선 마른 멸치나 고기를 넣어 맛을 더한다. 그대로 무쳐내는 생채(生菜)도 있고 한번 익혀낸 숙채(熟菜), 말렸다 불려 무치는 건채(乾菜) 등 종류에 따라 다양한 조리법이 든다. 또 쉬이 상하는 탓에 보관도 어려워 매일 준비해야 하니 고충이 더하다.


하동 ‘지리산대박터고매감’의 나물 


나물 덕에 식용 식물 가짓수는 대한민국이 제일이다. 민들레도 천문동도 무쳐 먹는다. 먹기에 썩 좋지 않으면 말렸다 먹고 삶고 찢어서 먹는다. 한국인이 먹지않는 식물은 독초이거나, 잔디처럼 너무도 맛이 없는 그저 ‘풀’일 뿐이다.

산과 들의 나물을 캐먹다가 그 맛이 좋으면 작심하고 길러서 작물이 되기도 한다. 명이나물(산마늘)이나 냉이, 달래, 참죽(가죽), 비름 등이 그렇게 농산물이 되었다.

원래는 구황이 목적이었겠으나 지금은 당당한 기호 메뉴가 됐다. 도시 교외에 가득한 나물 밥집들이 그 증거다.

봄나물은 그냥 집어먹어도 맛있지만 역시 섞어 먹는 복합미(複合味, Blending taste)를 선호하는 한국인은 사발에 밥과 나물을 한데 쓸어 넣고 쓱쓱 비벼먹길 즐긴다. 나물은 그렇게 비빔밥의 주인공이 됐다.

나물이 반가운 봄날이다. 교외에 산재된 나물 식당을 찾을라치면 봄바람도 쐬고 부족한 비타민도 채울 수 있다. 이래서 화창한 봄볕 쏟아지지만 나물이 더욱 그립다. 망설이면 봄도 나물도 진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

글ㆍ사진=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파주 ‘행복한밥상’의 나물반찬


[나물맛집]

△파주 ‘행복한밥상’

최소한의 양념만으로 나물 고유의 향을 살렸다. 튼실한 제육볶음 옆에 정렬한 냉이, 고사리 등 나물이 진용을 잘 갖췄다. 나물과 궁합이 딱인 된장 맛도 좋다. 문 앞에 가득 쌓인 메주가 헛된 장식이 아니다. 마장호수 출렁다리 가는 길에 있다.

△포천 ‘뜰’

골퍼들에게 소문난 곳이다. 정성껏 손질한 나물을 사발에 깔끔히 담아 놓고 불고기와 비지찌개 등을 차려낸다. 칼칼한 고추장도 시중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지만 그냥 먹어도 간이 적당하다. 나물 밥상에서 가짓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산채전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양평 ‘또순이네’

서울 양평동에 위치한 된장찌개로 유명한 식당이다. 보통 부추를 올리지만 요즘은 냉이를 넣고 끓인다. 코를 찌를 듯 향긋한 냉이 향은 소고기 된장의 진한 육향도 이길 만큼 강하다. 냉이는 푹 익히지 않고 바로 밥에 비벼야 봄날의 향기를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하동 ‘지리산대박터고매감’

고매감은 주인이 직접 농장에서 키우는 작물 고사리, 매실, 감을 뜻하는 상호다. 고사리, 애호박, 무생채, 버섯 등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낸 산채비빔밥을 낸다. 나물도 신선하고 참기름 향도 굉장하다. 정갈한 찬과 시래기 된장국을 함께 내주는데 금세 한 그릇이 뚝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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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부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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