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나게 맛있는 ‘얼큰 지존’
김치찌개ㆍ자장면 이어 ‘국민메뉴’
유래ㆍ요리법도 한ㆍ중ㆍ일 ‘짬뽕’
다양한 주재료로 끝없는 변신
시레기 짬뽕 |
시쳇말 중 ‘웃기는 짬뽕’이란 말이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웃긴다니 나쁘지 않다. ‘이것저것 짬뽕’이란 말도 쓴다. 짬뽕에는 고기도 해물도 들어가니 뭔가를 섞는다는 뜻으로 과거 짬뽕이란 말을 썼다. “어젯밤 맥주랑 소주를 짬뽕했더니 머리가 아파” 이런 식이다.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짬뽕은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중국음식점에서 짬뽕이 팔려나가는 비중을 보면 알 수 있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 점심 인기 메뉴에 짬뽕은 짜장면과 더불어 여러 한식 메뉴를 제치고 항상 상위권에 포진한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0년 조사한 직장인이 즐겨 먹는 점심메뉴 결과(중복응답)에선 짬뽕이 42.4%로 김치찌개와 짜장면에 이어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공주시 동해원 짬뽕 |
짬뽕은 어떻게 이처럼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짬뽕이란 음식은 어디서 왔을까.
조금 복잡하다. 이름은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음식은 중국어에서 기원했다. 화교가 만든 중식이지만 딱히 중식도 아닌 한식에 가깝다. 일본에도 있지만 일식 ‘잔퐁(ちゃんぽん)’과는 아예 다른 음식이다. 중국어로 번역을 하자면 ‘차오마몐(炒馬麵)’ 정도가 되지만 이 역시 우리 짬뽕과는 거리가 있다.
이럴 때 자료가 중요하다. 짬뽕이란 이름은 1899년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처음 등장한 잔퐁에서 유래했다. 중국 푸젠(福建)성 출신으로 시카이로(四海樓)를 운영하던 천핑순(陳平順)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인 유학생과 노동자들에게 이것저것 넣은 푸짐한 음식을 만들어주며 ‘츠판’(吃飯ㆍ푸젠성 사투리로 ‘밥 먹었니’라는 뜻)이라고 말했는데 이게 와전되어 이름이 잔퐁으로 됐다는 설(說)이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포르투갈어 기원설, 한자어 참팽(搀烹)설, 인도네시아 참푸르(Campur)설 등 다양한 유래설이 있는데 공통점은 모두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다는 점이다.
어쨌든 짬뽕이 아닌 ‘잔퐁’은 돼지고기와 해산물, 양배추 등을 볶아, 닭뼈 육수와 면을 넣어 먹는 푸젠식 탕러우쓰몐(湯肉絲麵) 형식이었다고 한다. 값싸고 푸짐한데다 맛이 좋아 삽시간에 인기를 끌었고 곳곳에 파는 집이 생겨났다.
대구 진흥반점 짬뽕 |
유래는 그렇고, 어쨌든 정작 한국 짬뽕은 독특하다. 빨갛고 매콤하다. 재료나 조리법은 푸젠성과 많이 떨어진 산둥(山東)성 차오마몐(炒馬麵)과 비슷하다. 일본 나가사키에 새로 생긴 국수 메뉴가 한반도에 상륙해 현지화되면서 이름만 갖다 붙인 것이 짬뽕인 셈이다. 일본에 많이 살던 푸젠 화교가 아니라 한국 화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둥 화교가 제 실력을 발휘했다.
짬뽕은 일본과 중국보다 한국에서 비약적으로 진화 발전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보다 매콤 칼칼하고, 다양한 재료를 넣어 푸짐하게 바뀌었다. 갑오징어나 주꾸미도 넣고 꽃게도 들어갔다. 나중엔 면 대신 밥을 말아내는 국밥의 형태를 갖추기도 했다. 짬뽕은 이제 한국식 중화요리 대표 메뉴로 자리했다.
서울 다동 원흥 짬뽕 |
한때는 짜장면과 우동이 중국음식점 식사부의 양대 메뉴였다. 짬뽕은 늘 특별 메뉴였다. 집에서 시켜먹을라치면 부모님이 ‘어른들 메뉴’라고도 했다. 알고 보니 짜장면 우동보다 조금 더 비쌌다.
곁가지 메뉴였던 짬뽕은 매운 음식 열풍에 힘입어 어느 순간 우동을 제치고 짜장면과 함께 양대 메뉴의 반열에 올랐다.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고증에 따르면 1960년대 이전에는 짬뽕이 이처럼 붉은색이 아니었다고 한다. 닭이나 돼지 사골 국물에 후추를 넣은 정도의 매운맛만 더해 팔았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인이 점차 매운맛을 찾기 시작하니 고춧가루를 볶아 넣은 지금의 짬뽕을 고안했고, 시간이 흐르며 이런 매운맛 선호 현상은 점점 심화돼 최근의 불짬뽕, 비빔짬뽕 등이 등장하게 됐다. 원래 초창기 짬뽕의 모습은 요즘의 백짬뽕, 굴짬뽕 등에 더 가깝다.
굴짬뽕 |
굴짬뽕은 진한 육수와 풍미를 즐기기 위해 먹는다. 빨간 국물에선 느낄 수 없는 굴 육수의 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요즘은 사계절 내오는 집이 많지만 굴은 겨울 별미라 그때 돼서 찾아 먹는 것이 낫다.
1980년대 들어 한국인의 식재료 소비수준이 올라가니 더 이상 주야장천 고기에 목메기보다는 해물을 많이 넣은 짬뽕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다 보니 화교가 아닌 한국인 주방장은 아예 고기를 빼고 짬뽕을 만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해물탕과 비슷한 해물짬뽕, 홍합으로 채운 홍합짬뽕 등 주요 식재료 이름을 내세운 짬뽕이 이 시기에 대거 등장했다.
대게 짬뽕, 바지락 짬뽕, 오징어 짬뽕, 차돌박이 짬뽕, 크림 짬뽕 등 요즘 유행하는 짬뽕들도 이 같은 트렌드에 호응해 생겨난 메뉴들이다. 중화요리처럼 굳이 삼선(三鮮)을 따질 필요 없이 인기있는 재료를 넣으면 무슨무슨 짬뽕이 새로 탄생한다.
울진 대게짬뽕 |
다른 메뉴는 거의 갖추지 않고 ‘짬뽕전문점’ 간판을 내건 집도 생겼다. 많은 식당에서 취급하는 만큼 맛집을 찾기 어렵지만, 역설적으로 실패할 확률도 적다. 어느 집이나 기본 이상은 한다.
‘짬뽕 국물’ 역시 당당한 메뉴로 팔렸다. 중국음식점 메뉴 요리부에 이름을 올리고 저녁이면 술꾼들의 안주로 팔았다. 면 대신 고기와 해물 건더기를 좀 더 푸짐하게 넣으니 중국집에서 보기 드문 국물안주로 인기를 모았다. 상대적으로 튀김과 볶음 요리 일색인 다른 메뉴들과도 궁합이 좋았다. 안주부터 해장까지 책임지니 실로 신기한 메뉴가 아닐 수 없다.
짬뽕밥이야말로 가장 한국화된 메뉴다. 딱 국밥이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다. 식사 때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선호하는 직장인들이 하루를 버텨 낼 든든한 포만감을 얻기 위해 짬뽕밥을 주문한다. 짬뽕밥은 짬뽕과 또 다르다. 맛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든든함을 채우려 가는 일종의 ‘충전’이다. 수저로 떠먹으니 훨씬 더 맵다. 칼칼한 국물에 잠을 깨고 오후를 지탱하는 약이다.
이름이야 어디서 왔든 딱 우리네 성정과 닮은 듯 짬뽕은 화끈하면서도 넉넉한 매력으로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한다. 냅킨으로 입을 닦고 나면 어깨가 절로 펴지는 그야말로 ‘웃기는 짬뽕’이다.
대구 진흥반점 짬뽕 |
◇짬뽕맛집
△원흥(서울 중구 다동) : 도심에서 짬뽕으로 가장 유명한 곳. 주문 즉시 재료를 볶아내 청량한 매운맛 국물에다 바로 말아낸다. 아삭한 채소와 쫄깃한 면발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짬뽕밥에는 좀 더 간을 진하게 하는 등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동해원(공주시) : 네티즌과 블로거들이 ‘전국구 짬뽕’으로 꼽는 곳. 가정집을 개조한 점포에서 오전 내내 짬뽕을 볶고 있다. 진하디 진한 고기육수에 말아 낸 면발이 압권. 점심 후 바로 문을 닫으니 일찍 가야 한다.
△진흥반점(대구 남구) = 순례객을 끌고 다닐 정도로 유명한 짬뽕 맛집. 심지어 점심시간 전에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불향 가득한 육수에 담긴 건더기는 아삭하고 쫄깃하니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살아 있다. 면발도 매끈하고 탱글탱글해 화룡점정을 찍는다.
△외남반점(상주시) = 우거지를 넣어 짬뽕의 시원한 맛을 최대한 끌어낸 집. 어느 곳의 짬뽕과도 비슷하지 않다. 육수에 시원한 맛이 가득 배어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속에 아삭함이 살아 있는 우거지는 쫄깃한 면발과도 어울린다.
글ㆍ사진=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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