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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교사도 피하지 못한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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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7-27 06:00:18   폰트크기 변경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두 차례로 나눠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학교폭력으로 삶이 망가진 주인공이 오랜 시간 준비해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줄거리인데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아픔에 함께 울고 복수의 성공에 통쾌해했다. ‘연진아∼’라는 대사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복수가 성공하곤 한다. 잘 나가는 연예인과 운동선수,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자녀가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곤욕을 치르거나 중도하차하는 일이 여전하다. 그만큼 학교폭력은 국민 여론에서 민감한 문제다. 나 또는 내 자녀가 당했거나 당할뻔했거나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학교폭력은 학생이 학생에게 또는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일이었다. 더 과거인 ‘라떼’로 가보자면 학교에서 교사에게 맞고 와도 ‘니가 잘못했으니 맞았겠지’라는 게 부모의 반응이었다. 학교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매’였다. 학생 간 폭행도 ‘친구끼리 싸움 한번 한 것’이라며 화해하거나 먼저 사과하는 게 미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법적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되는 수준의 폭력이 자행됐다. 하지만, 묵인됐다. 우리 세대에서 학교 다닐 때 이야기가 나오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맞았는지 경험담 또는 목격담이 한가득이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교육당국에서는 학교폭력을 없애는 데 중점을 뒀다. 물리적 혹은 언어적 폭력에서 학생을 보호하고 그들의 인권을 최우선시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과거 교육현장에서 벌어졌던 일만 고려한 탁상행정이었을까. 학교폭력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등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양상이 다양해졌지만, 인권과 보호 대상에서 교사는 빠졌다. 결국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폭언과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감정 노동자 처지로 추락했다. 교권을 침해받았을 때 소집할 수 있는 학교교권보호위원회라는 장치가 있긴 하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교장 등 소위 높은 사람들이 ‘좋게좋게 넘어가자’라고 회유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을 몰아세운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숨진 교사는 일기장에 ‘숨이 막힌다’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업무폭탄’을 적었다. 교육 일선 업무량이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정부는 오히려 교사 임용을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3월 기준으로 초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하고도 대기하고 있는 인원이 2081명에 달한다. 이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다.

정부는 한 교사가 세상을 등지고 교사들이 거리로 나온 다음에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다만, ‘전 정부 탓’, ‘진영논리’에 치우친 대책을 부랴부랴 만들 게 아니라 교육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한 전문성과 깊이 있는 대책이길 바란다.

개인적으론 은폐하거나 방치한 자에 대한 징계 강화가 대책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받는 징계보다 은폐했을 때에 대한 징계가 더 강해야 한다. 다양한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교에서 폭력을 ‘제로(0)’로 만들 수 있을까.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도 제로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최초 가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은폐하거나 방치한다면 가해는 지속되고 증폭된다. 숨진 교사의 상황 역시 학교가 몰랐을리 없지만, 학교는 숨진 교사가 ‘원한 업무’라는 식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다시 더 글로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극 중 가해자들 가운데 누가 제일 문제일까. 살인으로 이어진 학폭을 자행한 가해자들과 딸의 피해를 돈과 바꾼 엄마 역시 인간이기를 포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피해학생을 폭행하는 교사 캐릭터를 꼽는다. 학폭을 막아야 할 ‘보루’가 오히려 ‘더 잔인하게, 더 오래 해도 된다’라고 가해자들을 안심시켜준 셈이다. 은폐는 가해자들의 ‘뒷배’가 된다. 그가 은폐하지 않았다면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석 정치사회부장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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