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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인요한 혁신위 ‘희생론’의 한계와 전략적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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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1-18 04:00:14   폰트크기 변경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의힘 혁신위가 지도부·중진·친윤 핵심을 향해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구한 데 대해 당사자들이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양측 간 신경전이 길어지고 있다.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7일 오전 긴급회동을 갖고 악수하며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미봉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인 위원장은 자신의 행보에 대해 “대통령 측으로부터 소신껏 하라는 신호가 왔다”면서 대통령 지지를 부각하자, 김 대표는 “대통령을 당내 문제와 관련해 언급하지 말라. 당 대표 처신은 당 대표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되받아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혁신위가 지도부 등에 자기희생을 요구하고 당사자들이 버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소 코뚜레를 움켜쥐고 도살장으로 끌고 가려는 소장수와 안 가겠다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뒷걸음질치는 황소의 힘겨루기 장면을 연상시킨다. 부친 눈을 뜨게 하겠다고 스스로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처럼 대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을 자처해야 국민 감동이 뒤따르는 것인데, 억지춘향으로 몰아붙여 숨이 끊어진 희생물을 재단(齋壇) 위에 올려놓은들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불출마 내지 험지출마 레퍼토리는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작업을 주도했던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 히트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김 위원장은 낙천 대상인 현역의원들을 미리 비공개로 접촉해 불출마를 권유했고, 일부 의원들이 그에 호응해 겉으로는 ‘자발적’으로 보이는 불출마를 선언했던 것이다. 권유에 응하지 않을 경우 낙천자로 발표돼 불명예 퇴진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용퇴가 가능하도록 선택지가 제공된 것이다. 험지출마 제안도 마찬가지로 낙천 대상자들을 상대로 이뤄졌다. 기존 지역구에선 공천을 못 주겠다는 공관위 방침이 있었기 때문에 낙천보다는 울며 겨자 먹기로 험지를 택했던 것이다. 물론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대구수성구을에서 수성구갑으로 출마지를 약간 바꾼 주호영 의원 외에는 모두 낙선했다. 대권주자급이 아닌 이상, 철새처럼 날아온 타 지역 정치인을 지역구민들이 반길 이유가 별로 없다는 방증이다.

아무튼 인 위원장의 희생론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타이밍이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후보 참패로 끝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지난달 11일 실시됐고, 혁신위가 같은 달 27일 본격 가동에 들어갔지만, 내년 4·10 총선 때까지는 너무 멀다는 게 혁신위의 태생적 한계다. 보선 패인을 털어내고 내년 총선 승리 동력을 만들겠다고 출범한 혁신위로선 ‘인적 쇄신’ 외에 마땅히 국민 시선을 끌 만한 소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와 맞닥뜨려야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지금 의원들이 불출마든 험지출마를 택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인 위원장이 “대통령 사랑”를 거론하며 호응을 호소했지만, 그건 여의도 정치판을 너무 나이브(naive)하게 본 것이다. 정치인에게 본인들 정치생명 없이 대통령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통령 측에서 은밀히 ‘입각 제의’ 같은 보상카드라도 내밀면 모를까.

그런 점에서 인 위원장의 희생론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고, 태산명동 서일필로 끝날 공산이 다분하다. 인 위원장이 끝까지 밀어붙이면 당사자들도 막다른 길에 이르기 전까지는 최대한 버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 내상만 깊어지고 피로감만 쌓여 기대했던 효과보다 국민 실망이 더 클 수도 있다.

인 위원장은 그간 여러 차례 본인의 목표 달성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용단을 내려 ‘자발적인 희생 권유’ 선까지만 나아가고, 더 이상은 칼을 거두는 것도 대안이라고 본다. 일종의 전략적 후퇴가 될 수 있다. 그랬다가 내년초 출범이 예상되는 공관위의 위원장으로 권토중래한다면 그의 스타일로 볼 때 ‘개혁공천’을 제목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해 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 때는 인 위원장이 크게 용을 쓰지 않더라도 “당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불쏘시개가 되겠다”면서 불출마 내지는 험지출마를 선언하는 의원들이 줄을 서게 할 수도 있다. 지금 김 대표 입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인 위원장과 공관위원장 선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김 대표가 다시 만나 대의를 위한 타협을 일궈내야할 이유가 그래서 있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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