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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길을 묻다]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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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1-04 05:00:17   폰트크기 변경      
“K-건설, 부동산ㆍ공공도급 너무 의존…해외서 성장동력 찾아야”

낮은 생산성ㆍ기술ㆍ좁은시장 발목
‘도심 고밀개발’로 주택공급 필요
건폐율ㆍ용적률 획기적으로 완화
초과이익환수제도 유연하게 조정

업계는 금융조달능력 대폭 키우고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해외 투자개발사업에서 기회 생겨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가 지난달 27일 <건설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새해 한국경제와 건설산업의 나아갈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안윤수 기자


[대한경제=김국진 기자]“올해를 건설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글로벌시장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는 “새해 3高(고금리ㆍ물가ㆍ환율)로 대표되는 외생변수가 완화되고 새 기회가 올 것”이라며 건설산업계의 이런 노력을 당부했다.

이 교수는 “건설산업의 고질적 3低(낮은 생산성ㆍ기술ㆍ좁은 시장)부터 극복해야 한다”며 “공사비 갈등만 해도 원가가 10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올랐다면 생산성ㆍ기술 혁신으로 120억원 정도는 제시해야 국민적 동의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전제조건이 3不(부정ㆍ부실ㆍ불신) 극복이다. 그는 “급등한 생활물가는 감내하는 국민들이 오른 건설원가는 왜 흔쾌히 지불하려 하지 않을까”라면서 “수익에 보탬이 안 되는 철근 몇가닥 빠진 것이 과다한 이윤추구로 매도된다. 불신은 건설업계가 자초했고, 스스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작년ㆍ올해 건설시장을 어떻게 보나.

작년은 러-우 전쟁과 팬데믹 후유증으로 인한 물류난과 미국 고금리 기조 등 외생변수로 인한 3高에 신음한 해였다. 건설산업의 고질적 내생변수인 3低와 3不이 맞물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하지만 새해는 3高로 대표되는 외생변수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미국 금리가 내려가면 환율이 안정된다. 러-우 전쟁으로 인한 물류난, 고유가, 고물가 등도 완화될 것이다. 전쟁이 3년차에 접어들어 모두가 피로감을 느낀다. 게다가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있다. 표를 얻기 위해 안정을 택할 것이다.

부동산PF 위기감이 높다.

부실기업을 살리느냐, 산업을 살리느냐란 문제에서 정부와 산업계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부담스럽겠지만 선제적 정리가 필요하다. 주택공급이 고민인데, 신도시를 짓는 시대는 지났다. 도심 고밀개발로 풀어야 한다. 산업구조와 생태계는 집적화로 가고 있다. 건폐율, 용적률을 획기적으로 풀어 토지 고민을 완충해야 한다. 부의 형평성 문제 탓에 가격통제 수단으로 변질된 초과이익 환수제 등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 민간이 움직일 수 있도록 숨통은 터주는 게 정부 역할이다. 공급을 늘릴 대안은 용적률과 조세제도 개편뿐이다.

서울대에서 ‘건설 재도약’을 제안했다.

올해 3高 문제가 해결돼도 옛날로 돌아갈 순 없다. 재정건전성을 국정과제로 정한 정부가 재정으로 인프라 투자를 늘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내 건설시장의 70%가 민간의 주택시장인데, 정부에 의존하는 로또식으로는 지속하기 어렵다. 선진국처럼 정부 대신 민간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글로벌 선도자인데, 건설산업은 추격자 지위에 머물고 있다. 내수시장 울타리에 갇혀선 생존조차 어렵다. 인프라시장은 그대로인데, 주인이 바뀔 수 있다. 중공업기업이나 철강기업이 건설을 더 잘할 수 있는 융복합 시대다.

건설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바뀌는 세상이 건설을 바꿈을 직시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역동적 창조자로 거듭나야 한다. 인력(Manpower), 자재(Material), 장비(Machine)에 금융조달능력(Money)을 추가한 4M으로 무장하자. 정부와 정치권도 과감한 규제개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2018년 건설산업혁신위원장직을 맡아 업역 철폐 등 건설산업 생산체계 개편작업을 주도한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는 최근 LH 사태와 이를 수술하기 위한 정부 혁신안에 대해 아쉬움도 드러냈다. 사진 = 안윤수 기자


LH 혁신안은 어떻게 보나.

LH 문제를 이권 카르텔로 묶어놨다. 발주자가 발주를 포기하면 조직을 없애야 하나? 이권카르텔이 LH뿐인가? 조달청에 업무를 넘긴 것도 똑똑한 발주자를 키우기 위해 역대 정부의 건설선진화방안에서 여러차례 언급된 ‘중앙조달 폐지’란 글로벌 흐름에 역행한다. 미국 조달청은 직원이 3만6000명 이상인데, 학교든, 공공청사든 지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지만 우리 조달청은 입낙찰만 하는 중간 브로커 역할에 머물고 있다. 발주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건설생산의 삼각축은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인데, 국내에선 발주자가 빠지고 감리자가 들어왔다. 권한 없이 책임만 지는 대리인이다. 발주자 역할과 책임을 동시에 강화하는 게 건설 선진화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LH 혁신안은 유감스러운 면이 있다. 전관예우가 문제라면 입구에서 차단하면 된다. 입찰 등 사업자 선정단계에서 책임기술자 등의 평가 때 해당기업 재직기간을 최소 5년 이상으로 묶으면 된다. 세계은행이나 ADB(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 발주기관들도 그렇게 운영한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기업을 보고 일감을 주는 방향으로 손질해야 카르텔 논란을 끊어낼 수 있다.

글로벌 선도자를 키울 정부 역할은.

해외에선 계약서를 보고 일하는데, 국내에선 법을 보고 일해야 한다. 국내 건설산업 생태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해외에서 수십년 활약한 엔지니어가 국내에서 역량을 발휘할 무대가 없는 게 말이 되느냐. 해외시장으로 나가라고 주문하면서 제도는 글로벌하지 못한 상태로 방치하는 정부가 돼선 안 된다. 역대 정부의 9차례 건설산업 혁신대책의 평가는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실패에 가깝다고 본다. 건설 내부만 맴돌 뿐 자재, 기계 등 타 부처의 산업을 건드리지 못했다. 국민들이 누릴 실질적 혜택도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 사례를 보면 건설혁신을 백악관이 주도했다. 건설 대신 인프라를 앞세웠다. 낡은 인프라가 국민 안전의 최대 위협이란 공감대를 형성해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건설은 국민 주거와 생활인프라를 책임지는 산업이다. 국가 문제로 인식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건설업계의 노력도 중요해보인다.

건설사들도 익숙한 부동산과 공공도급에 빠져선 미래가 없다. 공공도급은 나눠먹기이고, 부동산은 브랜드가 지배한다. 글로벌 시장에선 브랜드가 안 통한다. 무엇보다 한 나라의 문화인 주택으로 승부를 거는 글로벌 기업은 없다. 선진국처럼 고부가가치의 소프트웨어, 즉 설계, PM 등 프로젝트 선행 단계를 키우고 투자개발사업의 지배자가 돼야 한다. 컨소시엄 내 다른 선진국 기업에 넘겨준 소프트웨어 분야를 찾아와야 한다. 민간 건설단체들이 이를 주도해야 한다. 부실이나 안전사고에도 제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산업 이미지를 지킬 수 있다.

인프라에 투자하는 재량예산 비중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이게 선진국 모델이다. 민간시장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국내든, 해외든 민간은 수익성으로 움직인다. 타깃 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치밀한 기획력과 창의적 발상을 키워야 한다. 조선이 세계 1위인데, 조선의 모태인 건설은 왜 1위를 못 하나? 충분히 할 수 있다. 갑진년 건설산업계가 변신(Change)하고 도전(Challenge)해서 세계 각국에서 기회(Chance)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김국진 기자 jinny@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는 메가 경제권 개발 성공의 관건으로 '네옴시티'와 같은 킬러 콘텐츠를 꼽았다. 메가 경제권 구상 과정을 글로벌 전문가들이 동참하는 국제설계 공모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사진 = 안윤수 기자


“메가 경제권은 ‘네옴시티’처럼 해야”
글로벌투자자 눈길 잡을 킬러콘텐츠


정주인구보다 생활ㆍ이동인구 잡아야

수평개발 벗고 콤팩트 수직도시로

“황량한 사막에 수직도시를 세우는 네옴시티나 인공도시 실험이 한창인 두바이처럼 글로벌 투자자들의 이목을 잡을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 이복남 교수는 소멸 위기로 내몰린 지방권 복원을 위한 메가 경제권의 차별화를 강조했다.

수도권 1극 체제를 탈피하려면 또다른 메가 경제권에 새롭고 발칙한 사업구상이 필수란 주문이다. 그는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내건 나눠먹기식 지역균형발전은 국민들에게 희망고문만 남길 뿐”이라며 “국내외 투자자들은 현재와 미래 가치를 냉철히 판단해 움직인다”고 조언했다.

개발방식의 대전환도 촉구했다. 이 교수는 “과거 산업단지가 광대한 수평 면적의 토지를 필요로 했다면 지금의 지식산업은 도시 속의 도시, 즉 고밀도의 콤팩트시티여야 한다”며 “국토를 2차원 수평면이 아니라 3차원의 입체적 공간으로 보고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주인구보다 생활인구, 이동인구가 더 중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그는 “서울 인구 1000만명이 깨졌다고 서울이 달라진 게 있느냐. 생활인구와 이동인구는 더 많고 활발해졌다”며 “물리적 인구분산식 균형이 아니라 산업과 인구생태계의 이동을 수용하는 열린 균형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로 몰리는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며, 결국 부산 등 지방권 메가경제권도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시장 환경에 맞춰 고밀도의 지식산업 중심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문이다.

고밀도 복합개발은 직주근접이란 면에서도 효율적이다. 탄소 저감은 물론 교통인프라도 아낄 수 있다. 최근 급부상한 신모빌리티가 육상ㆍ항공교통의 경계를 없애면서 메가경제권 곳곳의 핵심 콤팩트시티의 이동수단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윤석열 정부의 여섯 번째 국정과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좋은 지방시대’의 실천방안 역시 국토의 물리적 균형을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 수요에 맞춰 국토와 도시발전을 수용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산업은행 이전을 계기로 한 부산 메가경제권의 금융허브화 계획만 해도 부산을 공공금융허브로, 서울은 민간금융허브로 양립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했다.

그는 “부산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금융허브이자, 수도권에 버금가는 제2경제권으로 부상하려면 10년이 걸리더라도 국제선물거래소, 국제상품거래소 같은 국제금융기관 유치에 범정부적 역량을 쏟아야 한다”며 “일단 유치하면 국제금융산업계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지적했다.

민간투자법의 수술도 주문했다. 이 교수는 “사회인프라는 예산으로 구축한다 해도 국토와 도시인프라는 이제 민간자본에 맡겨야 한다”며 “재정건전성 기조 아래 부족한 재원 때문이며, 이를 위해 유명무실한 상태인 민간투자법령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민간투자법이 사용료 논란을 의식해 민간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법 취지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원가 산정 기반의 총액한도인 프로젝트 입구에 묶인 국내 민투법 체계를 사용료 규제로 대표되는 출구전략으로 전환해 자본만 민간일 뿐 관리감독이 기존 공공방식에 묶인 데 따른 비효율을 개선해야 한다”며 “그래야 글로벌 자본 유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간투자사업의 계약 때 사용료 상한선만 두되 입구와 진행 단계의 정부, 국회, 주무관청의 간섭이나 절차는 최소화하자는 제안이다.

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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