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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연금개혁과 대권주자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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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5-30 09:38:14   폰트크기 변경      

21대 국회 막바지에 핫이슈였던 국민연금 개혁안을 놓고 여당 내 대권주자급 정치인들 사이에 입장이 엇갈려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여당의 소득대체율 44%를 수용하겠다”며 모수개혁안 우선 처리를 제안한 데 대해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모수개혁은 구조개혁과 함께 추진해야한다(병행추진론)”며 반대하고 나섰다.


반면 같은 당 나경원 전 의원과 윤상현 의원은 “일단 모수개혁을 먼저 하고 구조개혁은 다음에 하자(단계추진론)”면서 이 대표 제안에 호응했다. 이 대표는 21대 국회에서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로 모수개혁안을 먼저 처리하고 22대 국회에서 보완을 위한 제2차 연금개혁을 하자는 입장이었다.

병행추진론과 단계추진론 모두 모수개혁만으로는 기금고갈을 막을 수 없고, 연금의 지속성을 위해 구조개혁을 해야한다는 데는 동의했다. 다만 구조개혁을 하기 위한 방법론에서 병행추진론은 “모수개혁을 먼저 해버리면 구조개혁 동력은 최소한 2027년까지 사실상 사라진다(유 전 의원)”면서 단계추진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단계추진론은 모수개혁을 먼저 하더라도 구조개혁이 가능하다고 봤다.

모수개혁은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어느 선에서 정할 것인지 결정하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다. 하지만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과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 기초연금부터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다. 국가재정으로 지급되는 기초연금이 대선 공약에 따라 40만원까지 인상이 예정돼 있는 등 연금액이 너무 높아지다보니 보험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의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 전 의원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 및 통합, 현재의 확정급여(DB)에서 확정기여(DC) 방식으로 전환 등을 구조개혁 방안으로 예시했다. 안 의원은 “군인연금은 예외가 불가피하지만, 그외 특수직역연금에 국민의 혈세를 계속 쏟아붓는 방식은 정의롭지 않다”면서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까지 개혁 대상으로 정조준했다.

아무튼 정부ㆍ여당은 모수개혁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22대 국회에서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일반적으로 연금 구조개혁은 우파 진영이 중시하는 ‘재정안정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과제다. 연금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가급적 ‘내는 돈’은 늘리고 ‘받는 돈’은 줄이는 방향으로 개혁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노후 생활안정을 위해 받는 돈이 충분해야 한다는 소득보장론은 좌파 측의 관심사다. 유 전 의원은 SNS 글에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구조개혁을 아예 외면해왔다”고 적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모수개혁을 ‘인질’로 잡고 있으면 더 큰 과제인 구조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유 전 의원은 같은 글에서 이 대표를 향해 “곧 시작될 22대 국회에서 구조개혁까지 하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이번 여름부터 바로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논의해서 올해 안에 처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글을 뒤집어보면, 22대 국회가 열리더라도 이 대표가 자발적으로 구조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본 것이다. 억지로라도 개혁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병행추진론의 실현 가능성이 열린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개혁 과제에서 자유롭다. 이 대표 입장에선 웬만해서 윤 대통령 업적 만들기에 힘을 보탤 이유가 없다. 객관적인 정치 구도는 병행추진론에 불리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박 수위가 임계점을 넘으면 이 대표도 병행추진론 시나리오대로 움직일 여지는 남아 있다.

연금개혁에서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완수하는 게 최선이란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현실적인 한계를 감안해 우선 가능한 영역부터 성과를 내자는 취지에서 단계추진론이 제기됐다. 단계추진론은 여당의 거부로 이미 국민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병행추진론의 성사 여부는 차기 대선 정국에서 대권주자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중대한 잣대가 될 것이다.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된다면 유 전 의원과 안 의원은 정치지도자로서 판단력과 통찰력을 높이 인정받을 것이다. 반대로 두 마리는 고사하고 하나도 못 잡는 최악의 결과가 초래된다면 정치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공허한 이상론자에 불과하다는 혹독한 판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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