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C 프로젝트 초기 설계 총괄
2020년 착공했지만 코로나에 발목
경영 환경 악화ㆍ건축비 폭증 등 문제
현대차 설계 변경에 긍정적 평가
“시민공간 등 새 가치 창출 기대”
한국 건축 자산 서울 힐튼 재개발
보존ㆍ개발 갈림길 속 ‘융합’ 제시
김종성 건축가는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건축의 의무이자 건축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기본요소”라고 말했다. / 사진 : 한형용 기자 je8day@ |
[대한경제=한형용 기자]“그것(설계 변경)이 현대자동차로서는 가장 현명한 최적의 안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종성 건축가(서울 건축 종합건축사 사무소 명예사장)는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프로젝트 설계 변경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현대차그룹이 애초 105층 초고층 빌딩을 지으려던 계획을 55층 2개 동으로 바꾸겠다고 설계안을 변경하자, 인허가 주체인 서울시는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며 제동을 건 상태다. 김 건축가는 105층안의 개발 계획안과 주요 건물의 디자인 등 설계를 총괄했다.
그는 “현대차로서는 연구개발에 써야 할 돈이 많은데 (이러한 자금을) 부동산(GBC)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 냉정한 눈으로 보면 성립이 안 된다”고 했다. 105층 규모의 GBC 조성을 위해 국방부의 레이더 기지 등에 지원해야 하는 천문학적 자금이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다. 그러면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곳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자 현대차 미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목적이 달성돼야 하는 게 옳다”고 했다.
<대한경제>는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롯데시티호텔에서 김종성 건축가를 만났다. 현재 뉴욕에 살고 있는 김 건축가는 잠시 귀국해 건축가 및 학생들에게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오른손에 움켜쥔 지팡이는 당장이라도 작은 펜처럼 변해 또다른 작품을 꺼낼 듯 비쳤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머리카락 한올은 물론 셔츠의 잘 다려진 주름과 단추마저 흐트러짐이 없다.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 로에를 스승으로 삼고 시카고의 일리노이공대(IIT)로 유학을 갔을 때와 IIT 건축대학장을 역임하던 시절을 회고할 땐 소년 같은 웃음도 보였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GBC’ 설계 변경과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하 서울 힐튼, 1983)’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땐 표정은 단호해졌고, 목소리는 강한 어조로 바뀌었다.
김 건축가는 2016년 옛 한국전력공사 부지에 들어설 GBC 프로젝트의 초기 설계를 총괄했다. 설계 실무는 미국의 스키드모어 오윙스 앤드 메릴(SOM) 등이 담당했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105층짜리 초고층 건물 1개동과 문화ㆍ편의시설용 저층 건물 4개동 등 총 5개 동으로 구성한 GBC 밑그림을 확정한 뒤 2019년 11월 서울시 건축 허가를 받아 2020년 5월 착공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 환경 악화와 폭증하는 건축비용은 초고층으로 설계된 GBC 프로젝트 추진에 걸림돌이 됐고,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만 했다. 김 건축가는 같은 시기인 지난 200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미국과 한국을 넘나드는 하늘길이 막히면서 프로젝트에서 한발 물러서야만 했다.
현대차는 4년이 넘는 고심 끝에 지난달 20일 ‘105층’ 마천루 대신 경제성ㆍ실용성을 살린 ‘55층’으로 설계 변경안을 발표했다. 높이 242m, 55층 타워 2개동과 MICE, 문화ㆍ편의시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될 저층부 4개동 등 총 6개동으로 조성하는 방안이다.
김 건축가는 예상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내 생각에는 (GBC라는 과업을) 물려받은 정의선 회장이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며 지금 발표한 선택은 아버지(정몽구 명예회장)의 의중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옳은 선택”이라고 했다.
공공의 가치도 강조했다. 김 건축가는 “(현대차그룹의) 사회적 가치와 기여 부문을 살펴봐야 한다”며 “(롯데월드타워와의) 높이 경쟁도 (코엑스와의) 전시장 규모 경쟁이 아닌 (예술의전당과 같은) 시민들의 공간이 될 수 있는 클래식한 새로운 가치 창출의 변화를 기대한다”고 했다. 천문학적 단위의 재정을 투입해 초고층이라는 상징성 대신 도시의 품격과 시민의 자부심을 높일 공공기여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견해다.
김종성 건축가가 재개발될 서울 힐튼의 보존을 바람한 알루미늄 소재로 된 ‘커튼월 외벽’과 브론즈ㆍ대리석 등으로 마감한 로비아트리움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 : 한형용 기자 je8day@ |
김 건축가의 또다른 관심사는 ‘서울 힐튼 호텔 재개발’이다. 서울 힐튼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김 건축가가 완성한 건물이다. 특히 건식 공법과 알루미늄 커튼월을 도입한 서울 힐튼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치른 지 불과 30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에 완성된 만큼 건축적 완성도 외에도 한국 건축사의 중요한 자산으로 꼽힌다.
하지만 서울 힐튼은 부동산개발회사에 팔려 철거를 앞두고 있다. 부동산개발회사는 호텔을 헐고 대규모 상업 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제5차 도시계획위원회 분과소위원회를 열고 ‘서울 힐튼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정비계획 결정 변경안’을 수정 가결했다.
그는 서울 힐튼 재개발에 대해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 ‘융합’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서울 힐튼에 적용된 건축ㆍ문화적 가치가 있는 부분을 유지하면서도 개발업체의 재산권은 훼손하지 않는 방안이다.
김 건축가가 보존을 원한 곳은 알루미늄 소재로 된 ‘커튼월 외벽’과 브론즈ㆍ대리석 등으로 마감한 ‘아트리움’ 공간이다. 건축 당시 국내 호텔 외벽 상당수는 콘크리트 패널이었지만 김 건축가는 알루미늄 외벽을 도입하는 혁신적 시도를 했고, 이용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는 “지하 1층, 1층 공간이 내부 공간으로 구성이 되고, 자연광이 2층 위 천창에서 인입되는 힐튼 로비와 아트리움을 보존하고, 거기에 새롭게 신축되는 면적들이 부분부분 연결되도록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서울 힐튼의 로비를 그대로 보존하되 새로운 건물 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해 (다른 곳에) 따로 조성하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는 이르면 7월께 서울 힐튼에 대한 정비사업 통합심의를 거쳐 최종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서울 힐튼 호텔 로비 아트리움. / 사진 : 서울건축종합건축사무소 제공 |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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