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27일 중의원 선거(총선) 결과가 표시된 자민당 본부에서 퇴장하며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사진:AFP=연합뉴스 |
[대한경제=김광호 기자]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 집권 자민당이 15년 만에 단독 과반 의석 지위를 잃으면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실각 위기에 놓였다. 당초 ‘지한파’로 기대를 모았던 이시바 총리가 궁지에 몰리면서 당분간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에서 대담한 결단을 내리거나 변화를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28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중의원 해산 전까지 247석을 보유했던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191석을 획득하며 과반(233석) 확보에 실패했다. 자민당과 연립하고 있는 공명당(24석 획득), 자민당 성향으로 분류되는 무소속 의원 6명과 합세해도 221석밖에 되지 않는다. 현직 각료인 마키하라 히데키 법무상, 오사토 야스히로 농림수산상도 낙선했다.
반면 해산 전 98석이었던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148석을, 7석이었던 국민민주당은 28석을 확보했다. 자민당 성향 무소속 의원 6명의 행보에 따라 야권이 과반을 점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졌던 이시바 총리는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취임 8일 만에 의원을 해산한 이시바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이른 시일에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선포했다.
그는 선거를 앞당기는 것이 비자금 스캔들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자민당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선거 시작 후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 12명을 공천에 배제한 것을 두고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선거 운동 막판에 자민당 본부가 비자금 문제로 공천하지 않은 출마자가 대표를 맡은 당 지부에 활동비 명목의 2000만엔(약 1억8000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심 이반은 가속화됐다. 또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자민당의 약점인 비자금 스캔들 문제를 집요하게 비판하며 정권심판론에 기름을 부었다.
이와 함께 이시바 총리가 취임 이후 경제 대책에서 특별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참패 원인으로 거론된다. 교도통신이 지난 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9%가 새 내각의 우선 과제(복수응답)로 ‘경기ㆍ고용ㆍ물가 대책’을 꼽았으며, 뒤이어 ‘연금ㆍ사회보장’(29.4%), ‘육아ㆍ저출산’(22.7%) 등의 순이었다.
그런데 이시바 총리는 과거 자신이 부정적으로 비판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옛 아베파 등 당내 반발을 의식한 듯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심지어 과감한 돈 풀기가 특징인 아베노믹스에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에서 퍼지며 증시가 급락하자 일본은행 총재와 만나 “추가 금리 인상을 할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번 참패로 이시바 총리가 ‘아시아판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등 독자 정책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에선 반대파를 중심으로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한 강경 보수 성향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벌써부터 이시바의 총리 퇴임을 노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관계 개선 모멘텀을 맞이한 한일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부 사정이 급해지면서 외치에 신경을 쓸 여력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역사 인식이 비교적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시바 총리가 당내 강경 보수파의 반발 등을 고려해 한일 역사 문제에서도 소신을 담은 발언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아울러 한ㆍ미ㆍ일 3국 협력 관계에도 적지 않은 변수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내년 한일관계 60주년을 앞두고 여러 가지 구상을 하던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김광호 기자 kkangh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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