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물납 기업, 40% 넘게 문 닫아
조세심판 제기 건수도 역대 최고치
자료 : 2024년 국세통계 해설서 |
[대한경제=한형용 기자] 한국 경제의 성장사다리가 상속세 규제로 무너지고 있다. 주식으로 상속세를 납부한 기업 10곳 중 4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로 가업 승계 대신 폐업 또는 매각을 선택하고 있어서다.
20일 국세청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 상속세 신고세액은 각각 20조4484억원, 13조7253억원으로 2013년 1조5755억원과 비교해 13배, 8배가 넘어섰다. 지난해 말 기준 상속세 신고세액도 4배가 넘는 6조4000억원에 육박했다.
납세자가 과세 당국이 부과한 상속세에 불복해 조세 심판을 제기한 건수도 지난해 307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해 35% 증가한 규모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기획재정부에서 제출받은 ‘물납증권 연도별 수탁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재부가 199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상속세를 주식 물납으로 받은 기업 311곳 중 휴ㆍ폐업한 회사는 126곳(40.5%)에 달했다. 연도별로 2015년 이전에 124개 기업이 휴ㆍ폐업을 했고, 이후 2개 기업이 상속세 부담으로 같은 길을 선택했다. 주식 물납 제도는 최대주주가 상속세를 낼 충분한 현금이 없을 때 주식으로 대신 납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999년 이후 세율과 과세표준 구간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반면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3배 이상 늘어나면서 기업뿐 아니라 개인마저 상속세 부담에 휘청거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속세 부담은 기술 수출 ‘8조원’이라는 기록을 쓴 한미약품 등 주요 기업의 경영권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2020년 8월 창업주 임성기 회장 별세 이후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 부담을 놓고 갈등하다 급기야 모친과 아들 형제 측의 고소ㆍ고발까지 확대됐다.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장녀는 상속세 부담을 위해 OCI와의 통합을 추진했지만, 장남과 차남 등이 이에 반발하며 경영권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 역시 이건희 선대 회장 별세 이후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가 세 모녀는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느라 주식담보대출에 이어 주식 처분을 통한 경영지분까지 내놓고 있다.
앞서 국내 사무용 가구 1위 한샘, 종자업체 1위 농우바이오 등은 상속세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사모펀드 매각을 결정하는 등 경영권 부실 우려도 가속화하고 있다.
재계는 21일 경제단체 공동으로 ‘상속세 개선 촉구’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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