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 한국경제인협회 제공, 그래픽 / 대한경제 |
[대한경제=한형용 기자] 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가량은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했거나 계획이 아예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달 13∼25일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서 응답 기업 122곳 중 56.6%는 ‘내년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다’, 11.4%는 ‘투자 계획이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3일 밝혔다. 지난해 조사와 비교해 ‘계획 미정’은 6.9%p, ‘계획 없음’은 6.1%p 증가했다.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한 이유는 △조직개편ㆍ인사이동(37.7%) △대내외 리스크 영향 파악 우선(27.5%) △내년 국내외 경제전망 불투명(20.3%) 등을 꼽았다.
내년 투자계획을 수립한 32% 수준의 기업마저 투자 규모를 축소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2025년 투자계획 규모를 묻는 질문에 59.0%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으며, 올해보다 ‘감소’할 것이란 응답은 28.2%로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 12.8%를 상회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증가’(28.8%) 응답이 ‘감소’(10.2%) 응답보다 많았다.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계획이 없는 이유는 △내년 국내외 부정적인 경제전망(33.3%) △국내 투자환경 악화(20.0%) △내수시장 위축 전망(16.0%) 등이 지목됐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8.15%p다.
글로벌 경기 둔화ㆍ트럼프 리스크… “투자활성화, 규제 완화 필요”
[대기업 내년 투자 계획 ‘막막’] 기업 50% “긴축경영 불가피”… 금융ㆍ세제 지원 ‘절실’
자료 : 한국경제인협회 제공, 그래픽 / 대한경제 |
‘글로벌 경기 둔화’, ‘고환율ㆍ물가불안’, ‘보호무역주의 확산’…. 기업들이 꼽은 2025년 3대 투자 리스크다.
한국 경제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낮췄고, 골드만삭스는 이보다 낮은 1.8%로 전망했다.
저출산, 고령화와 글로벌 경기 둔화 등 악재가 맞물리며 저성장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전산업 생산지수(계절조정ㆍ농림어업 제외)는 113.0으로 전달보다 0.3% 감소하며 소비, 설비투자, 건설 실적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지표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건설업 생산은 4.0% 감소하며 6개월 연속 줄었다. 6개월 이상 감소한 것은 2008년 1∼6월 이후 16년 4개월만이다. 설비투자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 등 기계류와 자동차 등 운송장비에서 투자가 모두 줄어 전월대비 5.8% 감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향적인 내수ㆍ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하라”고 주문한 배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따른 미국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 등에 따른 국제 무역 질서에 변화도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 임기 시작과 동시에 중국산 제품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체 수출로인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서도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대미 수출 감소로 남아도는 중국산 제품이 한국을 정조준할 때에는 한국의 산업 생태계에도 악재가 불가피하게 된다. 최근 몇년새 중국 철강업체들이 남아도는 철강을 해외에 저가로 판매하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1, 2위 철강기업들이 공장을 폐쇄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기업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30인 이상 239개사 CEO·임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5년 기업 경영 전망에 따르면 내년 경영 계획을 수립한 기업의 49.7%가 긴축 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현상 유지를 하겠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긴축경영 배경은 내수 부진을 꼽았다.
기업들은 투자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요 정책으로는 △금융지원 확대 △세제지원 강화 △지배구조 및 투자 관련 규제 완화 등을 꼽았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과거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기업 투자가 위기 극복의 열쇠가 돼왔는데 최근에는 기업들이 투자 확대의 동력을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금융ㆍ세제 지원 등 과감한 인센티브로 적극적인 투자를 유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메가샌드박스’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2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서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며 저성장 고착화를 경고하고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지역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라며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파괴적 제도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가샌드박스’를 강조했다. 메가샌드박스는 대구ㆍ경북, 강원권, 충청권 등 광역 단위 지역에 특화된 미래 전략 산업을 선정해 규제를 유예하고, 관련 교육ㆍ인력ㆍ연구개발(R&D) 등 인프라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 회장은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규제프리존을 훨씬 더 크게 메가 단위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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