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올 봄 기로에 선 ‘K-반도체’에 대해 우려가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삼성전자의 근원적 기술 경쟁력 약화에 대한 걱정이다. 인재 수혈은 미미한데 공들여 영입한 인재는 소리 없이 떠나고 있다. 주총장에선 한 주주가 직언을 했다. “삼성전자의 오늘의 위기는 현 경영진의 글로벌 인재 영입 실패에서 왔다. 앞으로 보유하고 있는 인력을 해외로 빼앗기지 않고 글로벌 인력을 얼마나 삼성이 흡수해서 운영할 수 있을지 대안을 밝혀달라”고 했다.
삼성전자의 2024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해외에서 영입한 전문가들은 최근 잇달아 사임했다. TSMC 출신 린준청 부사장과 인텔 출신 슈퍼컴퓨터 전문가 로버트 위즈네스키 부사장, 퀄컴에서 영입한 이성원 상무 등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AI 연구를 위해 펠로우로 영입한 위구연 전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2024년에 삼성리서치 활동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기업들의 공격적인 영입 전략을 보면 우리 기업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파격적인 보너스 제도를 도입했고, 아마존은 급여 상한선을 두 배로 올렸다. 실리콘밸리스타트업들은 초기 직원들에게 지분을 제공하고, ‘No Meeting Day’ 같은 제도로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
중국의 ‘천인계획(千人计划)’도 주목할 만하다. 해외 우수 인재에게 고액 연봉은 물론 연구비 지원, 가족생활 안정 패키지까지 제공한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라피더스 같은 기업들이 한국의 인재들을 높은 연봉으로 유혹하고 있다. 네덜란드 ASML은 자유로운 근무 환경으로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반도체와 칩 생산 최강자 자리를 두고 미국, 일본, 대만을 비롯한 전 세계가 한국의 핵심 인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첨단기술 개발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인재라면 원수라도 데려다 쓰라’는 사마천의 ‘용인술’(用人術)을 마음껏 구사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출신 연구원들이 엔비디아,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사례는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지금 이 시각에도 대한민국의 인재들에게 해외기업에서 이직 제안이 밀려들고 있다. 연봉의 2배, 3배를 기본조건으로 내거는 솔깃한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언제까지 값싸게 인재를 잡아둘 수 있단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 기업과 정부도 보다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요즘 첨담산업 분야 종사자들은 국적을 바꿔가면서까지 보상은 물론 유연한 근무 환경, 지속적인 연구 기회, 의미 있는 경력 개발을 동시에 검토한다.
이는 비단 삼성전자만의 사례가 아니며, 한때 세계 1위를 압도했던 K-기업 모두에게 해당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핵심 기술통 임원이 죄다 회사를 떠났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인재가 떠나는 기업의 이면에는 리더십, 조직문화, 보상 등 근본적인 거버넌스 문제가 반드시 도사리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연구개발(R&D) 투자도 없이 오직 비용절감만을 외치는 기업에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할 인재는 머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