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화가 박수근의 '목련'을 비롯해 만해 한용운의 10폭 병풍, 김환기와 이우환의 추상화, 김종학의 '벚꽃' , 앤디 워홀의 팝아트, 아야코 록카쿠의 그림 등 국내외 쟁쟁한 미술가들의 작품이 4월 경매시장을 달군다.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오는 22일, 23일 차례로 여는 메이저 경매에는 국내외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 242점이 입찰대에 오른다. 경매 작품들의 추정가 총액만도 2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 3월 메이저 경매보다 출품작과 낙찰 예정가가 비슷하지만 시장이 조정을 받고 있는 만큼 두 경매회사는 ‘착한 가격’을 내세워 미술애호가들의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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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 록카쿠의 작품 '무제' 사진=케이옥션 제공 |
손이천 케이옥션 홍보이사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침체에도 금융시장의 저금리 기조로 부유층의 여윳돈이 미술시장으로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며 “주식·외환시장 뿐만아니라 부동산시장이 불안해 투자자들은 자산포트폴리오를 비교적 안전 자산인 그림이나 조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글로벌 경제가 트럼프의 ‘관세 쇼’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든 상황에서도 지난달 28~29일 진행된 크리스티의 홍콩경매 낙찰률이 90%(낙찰총액 약 1591억)까지 치솟으며 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줘 국내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주목 된다.
◆서울옥션 132점-110억원대 출품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국내외 간판급 스타들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 판매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먼저 오는 22일 제183회 메이저 경매를 치르는 서울옥션은 만해 선생의 병풍을 비롯해 안중근 의사의 유묵 등 총 132점(낮은 추정가 총액 110억원)을 출품했다.
서울옥션은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의 조선침탈과 대한제국 패망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와 작품들을 전면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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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심우송' 사진=서울옥션 제공 |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만해의 '심우송(尋牛頌)' 10폭 병풍. 불도의 수행경로를 동자승이 잃어버린 소를 찾는 여정을 칠언절구 10수로 풀어은 대작이다.
고정호 서울옥션 홍보팀장은 “‘소를 찾다’라는 뜻을 지닌 '심우(尋牛)'는 만해가 임종할 때까지 거주했던 성북동 거처의 이름을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할 정도로 애착을 가진 단어”라며 “ 이번 출품작은 그의 종교적 성찰과 조국에 대한 염원이 하나로 결집된 상징적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만해가 노년기에 한국 전통 서예의 품격을 잘 보여준 이 작품의 추정가는 15억원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녹죽(緑竹)'도 전략 상품으로 경매에 부쳐진다. 녹죽은 예로부터 구전되는 오언시를 엮은 책 '추구(推句)'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실제로 푸른 대나무란 뜻을 지닌 '녹죽'은 1910년 2월 사형 집행을 앞둔 안중근 의사의 변함없는 지조와 절개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경매 추정가는 3억~6억원이다.
일제침탈 과정을 기록한 자료 역시 눈길을 끈다. 통상 ‘강화도조약’이라고 잘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관련 외교문서 일괄'은 추정가 5000만~1억원에 나온다. 조일수호조규의 부록과 무역규칙 체결 과정에서 양국 관리들이 필담을 통해 주고받은 실무적 대화와 조율의 과정 등이 담겨있다. 일본 패망 이후 도쿄에서 열린 전범재판 내용을 담은 속기록 '극동국제군사재판 속기록 349권 일괄'(1억원),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정음사 초판본(1000만~2000만원)도 눈길을 끈다.
서울옥션은 이와 함께 국내외 주요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과 럭셔리한 명품을 다채롭게 출품했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목련'은 유작전에 전시된 작품으로 추정가는 2억3000만~4억원이다. 박 화백 특유의 화강암 같은 재질감이 살아 있다.
‘숯의 화가’ 이배의 대표작인 '불로부터'(2억9000만~4억 5000만원)와 브론즈 조각(5500만~8000만원),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아티스트 콜라보 시리즈 핸드백(200만~1500만원), 꽃봉오리 형태의 골드 조각에 다이아몬드 장식이 세팅된 티파니 앤 코 브로치(950만~1500만원) 등도 경매에 오른다. 출품작들은 오는 22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직접 만나 볼 수 있다.
◆케이옥션 110점-104억원대 출품
케이옥션은 오는 23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여는 4월 경매에 110점(104억원)을 쏟아낸다.
일본 인기작가 아야코 록카쿠의 작품을 과감히 경매 도록 표지에 실어 미술 애호가의 투자심리를 자극한다는 전략이다. 이번 경매에 출품된 록카쿠의 작품 '무제'는 유년기의 감성과 상상을 감각적으로 펼쳐낸 수작이다. 손으로 직접 그린 선과 현란한 색채를 응축한 이 작품의 추정가는 2억2500만~6억원으로 매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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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의 '벚꽃' 사진=케익션 제공 |
‘설악산 화가’ 김종학의 '벚꽃'도 모처럼 경매에 등장한다. 설악산의 벚꽃 이미지를 마음 속에 담아뒀다가 작업실에서 꺼내 마구 짜낸 물감으로 거칠게 찍어발라 시적으로 재구성 했다. 거친 붓놀림이 원초적인 듯하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그림은 시공을 초월한 동화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정가는 3000만~60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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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무제' 사진= 케이옥션 제공 |
‘한국 미술시장의 대장주‘ 김환기는 물론 ’물방울 화가‘ 김창열, 추상화가 이우환 등 K-아트의 정점에 선 작가들의 대표작들도 줄줄이 경매에 나온다.
특히 김환기의 1967년 뉴욕 시기 작품 '무제'(6억~9억원)는 뉴욕에서 느낀 자연의 생명력을 비롯해 고국의 산천, 영원성, 향수 등 수많은 의미와 해석을 노란색과 녹청색면에 담아낸 작품이다. 뉴욕의 맑은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보고 고향을 떠올리며 그려서인지 두 색채의 대비가 청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4억 9000만~6억 5000만 원), '조응'(3억 2000만~6억 원), 김창열의 '물방울'(1억~2억 원)과 '회귀'(1억~2억원)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새 주인을 찾는다.
윤형근,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등 1세대 단색화가들의 작품도 대거 출격했다. 박서보의 ’묘법 No. 990127‘은 1990년대 이후 제작된 후기 ‘묘법’ 시기의 작품이다. 절제된 반복과 물질성이 강조된 조형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흑색 화면 위에 규칙적으로 눌러진 한지의 수직 골은 밀도 있는 물질감을 만들어 내고, 우측 하단의 어두운 삼각형 면은 시각적 균형과 긴장감을 더한다. 추정가는 4억~11원이다.
해외 미술 부문에는 앤디 워홀, 아야코 록카쿠, 하비에르 카예하, A.R. 펭크, 유이치 히라코, 제임스 진, 우고 론디노네, 필립 콜버트, 피터 핼리, 장 미셀 오토니엘 등의 작품이 눈에 띤다. 출품작을 미리 관람하는 프리뷰 행사는 경매가 열리는 23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진행된다. 관람료는 없다. 경매 참여는 케이옥션 회원(무료)으로 가입한 후 서면이나 현장 응찰, 전화 또는 온라인 라이브 응찰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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