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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심판이 ‘대통령 파면’으로 막을 내리면서 우리나라는 ‘6ㆍ3 장미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려와 달리 탄핵 찬성ㆍ반대 세력의 큰 충돌이나 대규모 폭력 사태는 없었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 헌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대통령 탄핵심판에 따른 혼란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었던 데는 헌법재판소의 공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 결정을 이끌어낸 문형배 전 재판관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폭주했다.
문 전 재판관의 과거 발언도 재조명됐다. 그는 2019년 4월 국회 청문회 당시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 그런데 국민들의 평균 재산(약 3억원)을 넘어선 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청문회 당시 문 전 재판관이 신고한 재산은 6억여원이었는데, 그중 2억여원은 부친의 재산이었고 실제 그의 재산은 4억원가량이었다. 최근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도 문 전 재판관은 이전보다 늘어난 15억여원의 재산을 신고했지만, 본인 명의 재산은 4억원대를 유지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다. 문 전 재판관은 국회 청문회 당시 2000년생인 아들의 재산으로 ‘30만3000원’을 신고했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10대 자녀 재산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경우가 즐비한 것에 비하면 무척 이례적이다 보니 “세뱃돈만 모아도 30만원은 넘겠다. 엄마, 아빠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이후 취재차 헌재를 찾았다가 문 전 재판관과 따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며 “재판관님이 너무 하신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졌는데, 문 전 재판관의 반응도 이례적이었다. 보통은 “제가 그랬나요”라면서 웃고 넘길 일인데, 그는 오히려 정색을 하면서 ‘스무살 되도록 먹여주고 입혀주고 키워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는 취지로 받아쳤다.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 전 재판관이 이른바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지난 18일 문 전 재판관과 이미선 전 재판관이 함께 퇴임했지만, 후임 인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헌재는 사실상 ‘개점휴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동안 심리가 중단됐던 사건도 많아 ‘7인 체제’에서도 바쁘게 돌아가겠지만,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중요한 사건은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사실상 심리가 어려울 전망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간의 통설과 선례를 뒤집고 대통령 몫의 재판관을 지명해 ‘월권’ 논란을 일으켰지만, 헌재의 가처분 결정에 따라 후임 지명은 결국 차기 대통령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온갖 정치적 사건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헌재의 정치적 중립’은 최우선 과제다. 대통령 지명 몫의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과 어느 정도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봉합하려면 어떤 사람을 재판관으로 지명ㆍ임명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네 편인지, 내 편인지를 헌법재판관 임명의 잣대로 삼으면 안 된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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