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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상반기 예산 조기집행’카드는 어김 없이 나왔다. 매년 사상 최대 규모의 신속집행을 계획한 결과 2019년 61%이던 상반기 집행목표가 올해 66.8%까지 높아졌다. 그럼에도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세 분기 만에 역성장했다.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신속집행을 집중했는데도 건설 부문이 1분기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끌어내린 탓이다. SOC 예산 집행률이 생각보다 저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경기 부양력이 예전만 못하다며, ‘상반기 예산 조기집행’의 약발이 떨어졌다고 분석한다. 특히 한때 GDP의 40%에 달한 정부 재정 비중이 20%까지 떨어진 만큼, 민간 주도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개진했다.
하지만 ‘정부 재정 투자’란 봄이 오지도 않았는데, ‘민간 투자’란 여름이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 재정 투입의 효과는 여전하다. 전세계적으로 경기 대응 및 정책 효과 극대화의 수단으로 예산 조기집행 카드가 다양하게 활용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경제 위기를 겪었던 2009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 ARRA(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경기부양법)를 연초 통과시키고, 약 8310억달러(약 1190조원) 규모의 재정 지출을 감행했다.
이 중 1050억달러(약 150조원)을 공공 인프라에 투자했는데, 에너지(900억달러), 교통(480억달러), 학교 및 병원 시설 보수(300억달러), 물·환경 인프라(180억달러) 순으로 예산이 배정됐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ARRA를 통과하며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인 만큼, ARRA 예산을 가져다 쓰는 사업은 무조건 120일 이내 착공할 것을 전제한 것이다. 또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항을 걸어 미국산 건설자재 사용을 의무화해 내수산업 활성화를 유도하고, 정부 웹사이트를 통해 예산 집행 현황을 실시간 공개하기도 했다.
그 결과 미국 의회예산국 분석에 따르면 ARRA 덕분에 2009~2011년 최대 연간 4.1%포인트에 달하는 GDP 성장률 상승 효과가 발생했다. 2010년 중반 기준으로는 무려 350만개 일자리가 늘어났다. IMF에서도 미국의 조기 재정지출 정책은 ‘선진국 중 가장 강력하며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다.
반면, 우리나라의 상반기 예산 조기집행 정책은 지루하다. 작년 상반기 집행 목표율을 모든 기관이 10%포인트 이상 미달했는데도, 별다른 개선책도 없이 올해 목표율만 상향 조정한 탓이다. 예산 조기집행에서 가장 중요한 대형 국책사업이 계속 유찰되며 조기집행은 커녕 미집행이 쌓이고 있는데도 근본적 대책을 강구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정부의 ‘예산 조기집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서가 아닌, 경기 부양 시늉을 해야 하는 공무원들을 위한 숫자놀음이다.
경제전망 전문기관에서는 지금 이 상황에 관세 쇼크까지 겹치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더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새 정부에 한국형 ARRA를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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