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산업체 종사자 2만 명대 회복 못해
탈원전 벗어나 기지개 켜는 시기
“차기 정부 정책 방향성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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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한슬애 기자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과거 탈원전 정책은 전 세계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충격으로 원전 확대를 주저하던 때 시행됐다. 지금은 모두가 에너지 수급 및 안보 측면에서 원전 기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시기다. 현 시점에 한번 원전 산업을 배척하면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K-원전 공급망의 경쟁력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윤종일 카이스트 원자력ㆍ양자공학과 교수)
장미 대선이 2주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원자력 업계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원전 정책이 왔다갔다한 까닭이다. 탈원전으로 회귀할지, 탈원전 폐기가 이어질지 기대반 우려반 속에 원자력 종사자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분명한 것은 다시 탈원전을 갈 경우 K-원전의 경쟁력은 회복불능 상태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점이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산업 생태계는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된 2017∼2021년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중이다. 그러나 5년간 드리웠던 정부의 탈원전 그늘은 여전하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최근 발간한 ‘원자력산업실태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3년 국내 원자력 산업 분야 매출액은 총 32조1556억원으로 최근 10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된 2018년(20조5610억원)과 비교하면 56% 늘어났다. 원자력산업실태조사는 원자력진흥법 등에 따라 매년 실시되는 것으로, 이번 조사에선 원자력발전사업자(2개)ㆍ원자력공급산업체(995개)ㆍ연구 및 공공기관(23개) 등 총 1020개 업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매출액 증가 추세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자력발전사업자가 이끌었다. 이들 매출은 지난 10년간 최저점인 2018년 15조1529억원에서 2023년 26조2659억원으로 11조원 이상 늘었다.
반면, 설계ㆍ건설ㆍ제조ㆍ서비스업 등 민간 중소ㆍ중견기업으로 구성된 원자력공급산업체의 매출은 2023년 4조5863억원으로 같은 기간 992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6년만 해도 5조5034억원에 달하던 매출액은 3조9269억원(2021년)까지 떨어진 뒤 좀처럼 5조원을 뚫지 못하고 있다.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최근 3년간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통계상으로는 아직 탈원전 정책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발전사업자는 이미 건설된 원전을 운영해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원전공급산업체들은 신규 사업 추진 여부에 따라 업황이 크게 요동친다”고 설명했다.
빠져나간 전문 인력들도 회복되지 않았다. 원전산업체 종사자는 2016년 2만2355명이었으나, 2019년(1만9449명) 1만 명대로 떨어진 이후 2023년까지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의 인력 고용에는 안정적인 일감 확보가 선행돼야 하는데, 그동안 정책 변동에 따라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ㆍ지원자 모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로 풀이된다. 더욱이 소형모듈형원전(SMR) 등 미래 기술개발 경쟁까지 고려하면 전문 인력의 감소는 뼈아프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K-원전의 경쟁력은 탄탄한 공급망에서 나오고, 이는 수많은 원전공급산업체가 떠받치고 구조”라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졌고, 전문 인력들도 적잖이 업계를 떠났다”고 한탄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된다면 전문 인력은 씨가 마를 수도 있을 것이다. SMR 개발을 하고 싶어도 인력이 없어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거래된 전력 중 원전은 32.5%를 차지했다. 원전이 국민 전체 전기 소비량의 3분의 1을 책임졌다는 의미로, 2007년부터 17년간 전력 거래량 1위를 차지하던 석탄발전도 제쳤다. K-원전 기술력은 체코 등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원전 소외 정책이 반복된다면 K-원전의 공급망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크다. 탈원전 정책의 그늘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는 시기, 차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노백식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일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원전 기업들은 탈원전의 충격에서 조금씩 회복하며 차기 정부 출범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정책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국내 원전 산업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진할 수 있도록 안정적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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