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 1세대 작가 도상봉(1902~1977)은 ‘그림은 생활 속에서 나온다’는 말을 평생 화두처럼 붙들고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나 보성고보를 졸업한 그는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에게서 그림 공부를 했다. 이어 일본으로 유학, 동경미술학교를 나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창설에 참여하는 등 초창기 한국 화단의 중추 역할을 맡았다.
국화와 라일락, 장미, 안개꽃, 튤립, 개나리 등을 정갈한 색채로 잡아낸 그의 정물화는 대상에 ‘심상(心象)’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꽃송이가 크지 않고 작으면서 다발을 이루고 있는 라일락을 즐겨 그려 ‘라일락 화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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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도상봉 화백의 '라일락'. 사진=서울옥션 제공 |
도상봉의 정물화 ‘라일락’을 비롯해 이우환의 추상화, 황염수의 장미그림, 일본 화가 요시토모 나라와 아야코 록카쿠의 작품 등이 5월 경매시장을 뜨겁게 달군다.
서울옥션은 오는 27일 강남센터에서 열리는 ‘컴템포러리 아트 세일’ 행사에 국내외 미술가 작품 총 89점을 경매에 부친다. 낮은 추정가 총액은 약 62억원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느껴지는 그림은 물론 국내외 유명 작가의 회화 및 입체작품, 럭셔리 명품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예술품이 두루 포함됐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은 “최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주요 국가들이 금리를 내리면서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금과 미술품, 달러 같은 안전자산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는 추세를 감안해 유명미술가의 작품을 낙찰받아 기존 투자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해 볼만하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으로 경매 출품작을 서핑하고 전화, 서면으로도 응찰할 수 있다.
서울옥션은 봄 색깔이 물든 명작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경매 ‘눈요기’는 뭐래도 도상봉의 수작 ‘라일락’이다. 백자 항아리에 가득 담긴 라일락꽃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은 꽃송이의 다발로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이 완고하면서도 단아한 백자항아리와 조화를 이루며 우아하고 격조 높은 미감을 자아낸다. 경매 추정가는 2억 2000만~3억 5000만원이다.
5월을 상징하는 장미를 소재로 40년간 작업 해온 황염수의 8호 크기 작품(3000만원-5000만원)도 경매 입찰대에 올린다. 짙은 푸른색 바탕 화면에 붉은색, 흰색, 분홍색 등 당양한 색깔의 장미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게 이채롭다. 봄날 이미지를 가득 담아낸 아야코 록카쿠의 2011년작 ‘무제’도 추정가 3억~5억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붓 대신 손가락을 직접 물감을 칠하는 특유의 방식으로 완성해 생동감 넘치는 질감과 화사한 색채를 화면을 가득 메웠다. 작가가 대형 원형 캔버스에 작업한 첫 번째 작품이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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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가 19억~25억원으로 27일 서울옥션 경매 최고가에 도전하는 이우환의 '대화'. 사진=서울옥션 제공 |
서울옥션은 국내외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도 다채롭게 경매한다.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이우환의 ‘대화’는 넓은 화폭에 커다란 점 하나만이 찍혀 있는 300호 크기의 대작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점차 옅어지는 푸른색의 점과 이를 둘러싼 여백의 상호 관계성 속에서 긴장과 조화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추정가는 19억~25억원으로 이날 경매 최고가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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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나라의 '폭탄'. 사진=서울옥션 제공 |
요시모토 나라가 악동같은 어린 소녀를 그린 작품 ‘무제-폭탄’도 추정가 2억2000만원~4억원
에 나온다. 폭탄이 연상되는 꽃 형상의 물체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가운데 노란 모자를 쓴 소녀가 땅 밑에서 밖으로 머리만 내민 채 커다란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담긴 이색적인 그림이다. 과감한 생략과 변형을 준 그림 속 소녀는 얼핏 보기에는 앙증맞지만 섬뜩한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의 시선에서는 현대인의 내면에 감춰진 두려움과 고독감, 반항심, 잔인함 등의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다양한 소재와 색을 활용한 입체 작품도 놓칠수 없는 볼거리다. 미국 조각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더 아메리칸 러브(The American LOVE -White Blue Red)’는 성조기의 색상을 떠오르는 흰색, 파란색, 빨간색을 사용한 조각품이다. 경매 예상가는 2억8000만~4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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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야요이 구사마의 '호박' 사진=서울옥션 제공 |
야요이 구사마의 ‘호박(추정가 2억 8000만~4억원)’은 흰색과 빨간색의 대비가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내고, 중국 화가 장샤오강이 24K 순금으로 제작한 ‘골든 메모리(Golden Memories-8000만~1억5000만원)’ 는 사라진 과거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게 특징이다.
럭셔리 섹션에서는 글로벌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의 대표적인 하이주얼리 라인 ‘Amethyst ‘Bird on a Rock’ Brooch(2500만~6500만원)‘ 가 출품된다. 약 60캐럿 크기의 자수정 위에 핑크 사파이어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새가 앉은 모습을 형상화했다. 1960년대 티파니의 대표 디자이너 쟝 슐럼버제가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모티브로 재해석되어 출시된 바 있다.
루이비통과 다카시 무라카미의 협업 20주년을 기념해 출품된 클러치백 ’Koro Koro Clutch‘, 전통적인 디올 디자인의 가방에 현대 무용에서 영감을 받은 만화경 패턴을 더한 ’Mini Lady Dior Kaleidoscope Bag‘ 또한 럭셔리 섹션의 주요 출품작이다.
출품작들은 경매 당일 27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한편 서울옥션은 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오프라인 경매 기간동안 ‘수집은 곧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라는 테마로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 그동안 서울옥션과 인연을 맺어온 소장가들이 출품한 회화와 도자 등 작품 총 89점을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했다. 예술 수집 행위를 단순한 소유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창조적 행위로 조명한다.
김환기의 뉴욕시기 점화와 초기작 '새와 달'을 , 윤형근, 손상기, 야요이 구사마, 현대 도예 작가 권대섭,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을 펼쳐보인다.
고정호 서울옥션 홍보팀장은 “이번 전시는 예술 수집이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개인의 미적 취향과 철학을 반영한 창조적 과정임을 보여주는 자리”라며 “컬렉션이 가진 문화적 의미와 미학적 가치를 새롭게 조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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