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을 신분범으로 처벌하는 형사처벌법이다. 이재명 정부는 대선공약에서 노동안전청 신설, 플랫폼ㆍ특수고용노동자 보호, 위험의 외주화 금지, 불법 하도급 규제, 작업중지권 보장 등 중대재해 처벌 강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해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업종은 건설업이다. 건설정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법 시행 후 기소된 37건 중 33건(89.2%)이 유죄 판결로 이 가운데 29건(78.4%)은 중소기업이 처벌 대상이 되었다. 특히 건설업은 전체 유죄 판결 중 15건(53.6%)을 차지하여 업종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건설산업의 구조적 특성, 즉 중층적 도급 구조와 외주ㆍ일용직 중심의 인력 운용, 공정의 복잡성과 작업장의 유동성 등으로 인해 원청 도급인이 현장의 모든 위험요인을 통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 울산지방법원은 “사고는 작업자의 예외적 오조작에 기인한 것으로서 도급인이 이를 예견하거나 회피할 수 없었다”라며 원하청 모두를 무죄로 판시하였다(2025. 2. 13. 선고, 2024고단205 판결). 또 다른 사례로, 전주지방법원은 하수관로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근로자가 굴착지반 붕괴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하청업체의 공사부실 문제로 원청의 예견 및 회피가 어려웠던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하였다(2025. 5. 16. 선고, 2023고단1699 판결). 이는 사법부가 현장 책임 구조와 법적 규범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하며, 형사처벌 기준의 엄격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형사처벌의 강화는 산업현장의 위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2025년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전국 건설업 신규 착공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7.2% 감소하였으며, 도급인 및 관계수급인들이 ‘법적 안전 리스크’를 이유로 수주를 포기하는 사례도 전년 대비 24.7% 증가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현장 안전 강화를 위한 실질적 투자보다는 ‘과잉보고’와 ‘형식적 서류 구비’, ‘교육 이수 증명자료 확보’ 등 표면적 대응의 비효율적 행정 부담만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처벌 강화만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접근에서 벗어나, 정책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소규모 사업장에 맞는 안전보건 관리체계인 ‘인정안전관리체계’를 도입하여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경영 동참을 유도하고, 사업장별 위험관리 사전 대응 차원의 ‘안전준수인증제’를 도입하여 중대재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부실자재, 부실시공 방지를 통한 ‘건축성능인증제’를 확대 적용하여 재해재난을 원칙적으로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기존 형사처벌 위주에서 벌점제, 시정명령, 벌금, 과태료 등을 단계적으로 기업에 부과하는 행정형벌적 제재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러한 제안은 단지 형벌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법의 실효성과 법 적용 시 고용불안과 협력사 연쇄적 피해 등을 고려한 입법적 필요성을 시사한다. 특히,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해외 사례에서 보듯 영국(HSE)의 경우 기업의 자율적 위험관리 체계 평가를 전제로 경고 및 과태료 부과 중심의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미국(OSHA) 또한 단계적 행정형벌 부과로 형사처벌은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행정지도와 산업위생 기준의 점검을 강화하되 형사적 제재는 보완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이들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예방 중심의 안전문화 조성과 행정집행의 실효성 확보를 병행하고 있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산업안전이 단기적 형벌 강화로 정착되기 어렵다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중대재해 예방은 처벌 중심보다 ‘안전문화 정착’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Michel de Montaigne)가 “법들은 정당해서가 아니라 법치이기 때문에 신뢰를 얻으면서 존속한다”고 했듯이 법이 강해서 따르는 것보다 법적 신뢰를 기반으로 이행행위에 대한 이익이 따르도록 할 때 입법목적은 앞당겨질 것이다.
김진권 법무법인 대륙아주 전문위원ㆍ인하대 제조혁신대학원 초빙교수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