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9년만에 쟁점 항목 개정 나서
불명확한 기준이 ‘기획 소송’ 키워
신유형 포함ㆍ판단 방식 등 명문화
법조계 “감정인들 재량 제한해야”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법원이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사실상 ‘규범’으로 자리잡은 ‘건설감정실무’ 개정에 나섰다. 지난 2016년 개정 이후 무려 9년 만이다.
대표적인 하자 항목인 ‘층간 균열’ 등에 대한 판단 기준이 어떻게 바뀔지, 건설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롭게 나타난 하자 유형이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 |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 대한경제 DB |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건설소송실무연구회는 최근 건설감정실무 개정을 위해 주택건설업계 등을 상대로 의견 수렴에 나섰다.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지, 어떤 부분을 새로 반영해야 할지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중앙지법 관계자는 “기존 내용 중 기술 발전, 관련 규정 개정 등을 반영하고, 소송에서 자주 쟁점화되는 하자에 관한 판단 기준을 발전시키는 등 궁극적으로 건설실무의 개선과 분쟁의 효율적 해결을 도모하는 취지로 개정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개정 작업 상황 등에 따라 개정판이 언제 나올지는 유동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개정 취지에 맞게 ‘내실 있는 개정’을 계획하고 있다는 게 법원 측의 설명이다.
하자소송 등 건설 분쟁에서는 감정 결과가 사실상 소송의 승패를 좌우한다. 하자의 종류와 원인 등이 다양하고 복잡해 이를 해결하려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건설 분야의 비(非)전문가인 판사들로서는 감정인들이 내놓는 감정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정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동일한 감정항목이라도 하자로 봐야 하는지 감정인마다 의견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하자보수비를 산정할 때도 저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건물, 같은 부분에 대한 감정 결과가 감정인에 따라 세대당 최소 몇십만원에서 최대 몇천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일도 있다.
이에 중앙지법은 감정 결과 편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1년 건설감정실무를 처음 내놨다. 전국 최대 규모의 하급심 법원인 중앙지법은 건설전담 재판부도 전국에서 가장 많다.
건설감정실무에는 △감정절차 △건축물 하자 감정 △건축물 피해 감정 △공사대금 감정 △현장조사 방법 △감정서 작성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2016년 개정판에는 당시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던 방화문 성능 하자와 공사기간 연장으로 인한 추가 간접비, 인접지 공사로 인한 건축물 피해 감정 등에 관한 내용이 추가됐다.
건설감정실무의 파급 효과는 상당했다. 이미 중앙지법을 넘어 전국 법원이 하자 여부나 보수비용 등을 판단할 때 건설감정실무에만 의존하는 경향까지 보일 정도로 소송 실무에서 규범화된 상태다. 오히려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건설감정실무가 행정규칙인 건축공사표준시방서 등의 기준ㆍ지침보다 더 높은 기준으로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주요 하자 항목에 대해 표준화된 기준이 부족한데다, 새로운 하자 항목에 대한 기준도 없다 보니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16년 개정판의 경우 관련 분야 교수나 학회 등 전문가들의 참여 없이 극히 일부에 의해 개정 작업이 주도되는 등 전문성과 다양성 확보에 실패했다는 비판도 많다.
광주고법은 2022년 아파트 하자소송 2심에서 1심 판결을 일부 뒤집으면서 “개별적인 사정을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2016년 건설감정실무에서 정한 기준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 고집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내놨다.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공동주택 하자의 조사, 보수비용 산정 및 하자판정기준’ 고시도 있지만, 하자판정 고시는 국토부 하자심사ㆍ분쟁조정위 단계에서만 받아들여지는 수준이다.
건설감정실무와 하자판정 고시 모두 구속력 있는 법적 기준은 아니지만, 법원은 ‘하자판정 고시는 행정규칙에 불과해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 구속력은 갖지 않는다’며 하자판정 고시를 근거로 한 당사자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문제가 감정인들의 ‘재량권 남용’ 문제와 결합해 입주자들에게 ‘거액의 하자보수비를 받을 수 있다’며 기획소송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자소송 전문가인 정홍식 법무법인 화인 대표변호사는 “건설감정, 특히 하자보수비 산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감정인의 재량이 너무 커서 적절한 제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균열보수 공법과 균열수량 조사는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균열보수 공법은 국가가 영구임대 아파트에 대한 균열보수 현장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드론 등을 이용한 기계적인 조사는 마감재 균열에 그친 균열을 제외할 방안이 먼저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윤 기자 leesy@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