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매년 4명씩 16명 증원
상고심 적체 현상 등 해소 기대
전원합의체 판결 사실상 불가능
조직ㆍ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도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증원을 포함한 이른바 ‘사법개혁법’을 추석 전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예고하면서 사법개혁 논의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서는 사법개혁 취지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거대 여당의 속도전이 ‘졸속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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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
13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전날 당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사법개혁법을 추석 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민주당 사개특위의 활동 목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해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 △법관 평가 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크게 5개 항목이다.
이 중 가장 큰 이슈는 ‘대법관 증원’이다. 현행 법원조직법상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으로 규정된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겠다는 게 민주당 방침이다. 앞으로 4년간 1년에 4명씩 대법관을 16명 증원하는 방식이다.
앞서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첫날인 지난 6월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서 이 같은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이미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상태다.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이 매년 4만여건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상고심 제도 개선은 오랫동안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은 전체 대법관 13명 가운데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 12명이 4명씩 3개의 ‘소부(小部)’를 구성해 1명당 연평균 3000~4000건의 상고심 사건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불거졌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도 대법원이 상고심 제도 개선 방안으로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과도한 입법 로비를 벌인 게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법관 수가 늘면 당장 상고심 사건에 보다 많은 역량을 투입할 수 있게 돼 대법관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속한 사건 처리를 통해 상고심 적체 현상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다. 앞서 대한변호사협회도 대법관 증원에 찬성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법관이 대거 늘어날 경우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돼 대법원의 법령해석 통일 기능과 정책법원 기능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상고심 사건을 다루는 전원합의체가 심도있는 토론보다는 국회처럼 표결로 다수 의견을 정하는 방식으로 흐를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대법원도 전원합의체를 통한 통일적 법 해석이라는 이른바 ‘원 벤치(one-bench)’ 시스템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대법관 증원에는 반대해왔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A부장판사는 “어떤 식으로든 상고심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원 벤치’는 말 그대로 하나의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의미가 있다”며 “정책법원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법원의 사건 처리율만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장판사 출신인 B변호사도 “상고심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대법관을 늘려야 한다면 어느 정도 늘릴 것인지 차근차근 논의해야지, 무작정 ‘대법관을 대거 늘려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사법개혁은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전광석화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대법관 수를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리면 대법관 집무실 공간은 물론, 상고심 사건을 검토ㆍ연구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속실 인력 등 대법원 조직ㆍ예산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선 판사들을 대거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데려오면 하급심 판사 부족 문제가 악화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C부장판사는 “지금도 대법원 내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법관을 2배 이상 늘리려면 청사를 새로 짓는 수밖에 없다”며 “재판연구관 문제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사법부 흔들기’나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의심도 민주당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대선 직전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에야 민주당이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었다는 이유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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