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폭포 품은 포항 내연산 새벽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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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연산 폭포 절경 / 사진 : 포항시 제공 |
“기상 관측 이래 최고”, “역대급 더위”…. 매일 기온 이야기로 난리다. 이런 더위에 산행은 쉽지 않고 위험하기도 하다. 계절이 바뀌길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도 산에 가지 않으면 주말이 지루한 ‘등산 중독자’라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달 초에는 더위를 피해 우거진 숲속 고도(高道) 산행을 다녀왔다. 다른 방법도 있다. 새벽에 시작해 아침에 끝내는 이른 산행이다. 계곡을 끼고 물과 함께 걷는 것도 방법이다. 마침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한 코스가 있어 더위가 절정인 이달 중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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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연계곡의 가을 모습 / 사진 : 포항시 제공 |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는 내연산은 웅장한 계곡과 12폭포로 유명한 지역 명산이다. 공략법은 두 가지다. 문수봉, 삼지봉이 있는 정상부는 큰 바위 없는 육산의 성질이 강하다. 하산길로 삼는 계곡길은 폭포와 바위로 이뤄진 골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르막 정상부는 해가 없거나 약할 때 오르고, 날이 뜨거워질 무렵에는 시원한 계곡과 폭포 곁을 내려오는 계획이다. 새벽 4시쯤 시작해서 오전에 끝내는 일정이다.
서울 사당에서 자정쯤 출발해 4시간을 달려 내연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 시원하다. 일단 작전 성공이다.
보경사 일주문을 지나 좌측 길로 접어들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아차! 깜빡하고 헤드 랜턴을 안 챙겼다. 아쉬운 대로 휴대폰 플래시로 대체했다. 곧 여명이 시작될 거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지도 상으로는 좌측에 계곡이 있을 텐데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최근 비가 많지 않았나. 어두운 산행길에 겨우 표지판을 찾아 오른쪽 문수봉 쪽으로 접어든다.
계곡을 벗어나니 길이 가파르다. 험한 길은 아니지만 경사가 급해 이내 땀이 뿜어져 나온다. 새벽 산행이라도 8월이다.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오르기를 30분. 흐릿한 여명이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끈다.
잠시 후 임도가 나타나는데 4륜 바이크도 충분히 다닐만한 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정상 삼지봉으로 연결되는 것 같은데 문수봉을 먼저 보려고 표지를 따라 오른쪽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출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생각했던 봉우리와는 다르다. 사방이 나무들로 막혀 있는 작은 헬기장. 일출은 숲 넘어 붉게 물든 하늘빛으로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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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봉 표지석 |
봉우리 주변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산악회 리본이 많다. 국사당 오색천 같다. 동료들이 길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나 뭔가를 비는 마음은 닮았겠구나 싶다.
잠시 숨을 고르고 삼지봉으로 향한다. 조금 내려가 아까 벗어났던 넓은 임도를 따라 오른다. 은폭포 갈림길을 지나니 정상 삼지봉이다.
삼지봉도 보통 생각하는 그런 정상의 느낌은 아니다. 문수봉과 비슷한 공간이다. 한 등산객이 드론으로 풍경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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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지봉 표지석 |
내연산 계곡과 폭포를 만날 차례다. 산악회에서 안내한 길로 가면 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아서 향로봉 쪽으로 좀 더 오르다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실수였다.
스마트폰 맵과 표지를 보고 따라갔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그런지 정확하지 않았다. 결국 길을 잘못 들었다. 등산 코스가 아니라 심마니들이 다니는 그런 길로 빠진 것 같았다. 겨우 계곡까지 내려왔다. 잘 모를 때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가야 한다. 산에서는 욕심내면 안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체력을 많이 소모했지만 계곡길에 대한 기대감으로 힘을 내본다. 물이 좀 부족해 보여도 계곡은 꽤 크다. 설악산 비선대 계곡길 같은 느낌도 든다. 커다란 바위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서 있다.
계곡길을 따라가다 보니 폭포가 시작된다. 첫번째는 은폭포다. 좁은 바위틈을 벗어나 넓게 흩뿌려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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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폭포 |
다음은 연산폭포인데 소금강 전망대를 보고 싶어 일단 그쪽으로 오르기로 했다. 전망대에 갔다가 내려와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다.
전망대가 꽤 높은지 경사가 급하다. 전망대에 못 미쳐 계곡 건너편으로 괜찮은 풍경이 보인다. 걸음을 멈추고 좋은 각도를 찾아 사진을 몇 장 찍어 본다.
가파른 암벽 위의 정자가 계곡을 말없이 보고 있는 모습인데 수묵 산수화에서 많이 본 그런 풍경이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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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 맞은 편 암벽과 정자. |
전망대 정면에는 조금 전 봤던 정자를 이고 있는 암벽이 버티고 있고 오른쪽 아래로는 관음폭포와 연산폭포가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 위는 커다란 봉우리들이 자리싸움 중이고 왼쪽으로는 포항 앞바다까지 아득하다. 내연산을 모두 품은 것 같다.
보현암 쪽 계곡길로 내려간다. 거슬러 500m쯤 오르면 관음폭포와 연산폭포다. 관음폭포에선 두 눈처럼 생긴 굴 옆으로 물 두 줄기가 사뿐하게 내려앉는다. 폭포 위로는 연산폭포로 이어지는 연산구름다리가 놓여 있는데 자연미와 인공미가 공존하며 나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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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폭포 |
구름다리를 건너 연산폭포로 향한다. 연산폭포는 높이 12m로, 12폭포 중 가장 크다.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로 알려져 있다. 겸재 정선이 그렸다는 ‘내연삼용추도’의 실제 배경이다. 그런데 이날은 물이 없어서 그런지 물줄기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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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폭포 / 사진 : 포항시 제공 |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삼보폭포가 있다고 하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계곡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야 보일까.
뒤돌아서 계곡과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에 눈길을 맡겨 본다. 계곡 바위에서 숲으로, 하늘로 이어지는 심도 깊은 풍경이다. 파란 하늘에는 목화송이 같은 구름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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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계곡 |
마지막은 상생폭포다. 쌍둥이 폭포라고 해서 쌍폭이라고도 불렸다는데 그 이름이 무색하다. 오른쪽 줄기가 힘겨워 보인다.
계곡길이 끝나면 보경사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천년고찰이다. 새벽어둠 속에서도 상당히 큰 사찰이라는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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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생폭포 |
절에서 내려오면 다시 주차장이다. 어느새 뜨겁게 달궈졌다. 새벽에 왔던 그 주차장이랑 같은 곳이 맞나 싶다. 더 더워지기 전에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햇볕을 피하고 물을 곁에 두니 여름 산행도 할만하다. 그래도 권하지는 않겠다. 산에 미친 사람이라면 여름에는 이런 방법도 있다고 전할 뿐이다.
글ㆍ사진=박종현 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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