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후들거릴 정도로 오싹하지만 비경에 감탄
정상에 비석있는 봉우리…신라 진흥왕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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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에서 본 북한산의 봉우리들 |
완연한 가을이다. 기나긴 여름을 지나 겨울로 가는 길목이다. 낮 공기도 확실히 다른 느낌이고 아침저녁으로는 꽤 선선한 혹은 서늘한 바람이 느껴진다.
가을 산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이었는데 함께하기로 한 길벗이 산행 후 일정이 있어 가깝고 주차가 가능한 코스로 하자고 한다. 가깝고 주차가 편한 곳이라….
한 곳이 떠올랐다. 바로 북한산 진관사 코스다. 공영주차장에서 진관사 일주문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고, 일주문에서 바로 산길로 접어들 수 있어서 차가 있으면 편하게 입산하기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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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관사 극락교와 해탈문 |
‘삼각산진관사’라고 쓰여진 일주문을 만난다. 여기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극락교를 건너 해탈문을 지나 계곡길로 가거나 극락교 우측으로 빠진 길로 가면 기자 능선과 합류해 올라갈 수 있다. 기자 능선 쪽이 볼 게 많아서 우측 길로 들머리를 잡았다.
초반에는 넓고 편한 길이다. 하지만 이내 길이 험해지는데 이런 길이 한동안 지속된다.
길이 힘들고 지겨워질 때쯤 되니 주변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앞쪽 그러니까 남쪽으로는 진관봉 주변의 봉우리가, 뒤쪽인 북쪽으로는 백운대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이 코스를 걷게 되면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조망하는 지점의 높이와 각도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따라다니는 걸 보게 된다. 이 코스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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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우)과노고산(좌) |
길이 조금 어질러져 있어 잠시 헤매긴 했으나 곧 기자 능선길을 찾아 오른다. 이제 뒤쪽으로는 원효봉도 보이고 노고산까지 넓은 풍경이 펼쳐진다. 앞쪽으로는 족두리봉이 수줍게 서 있다.
조금 더 올라 고개를 하나 넘어서니 서울이라는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울이 품고 있는 산들도 모두 모습을 드러낸다. 북한산의 족두리봉부터 인왕, 백련, 안산 등 서부 3산과 남산 그리고 멀리 관악산까지….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거대한 손이 군데군데 봉우리를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서울, 참 멋진 도시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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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능선에서 본 서울의 봉우리들 |
진관봉에 오르니 드디어 비봉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피뢰침처럼 비석이 솟아 있는 비봉과 왼쪽 보현봉 밑 사모바위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향로봉을 지나 잠시 후에 걸어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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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 능선 |
삼각점봉이다. 서울의 웅장한 모습이 한층 더 멋있게 펼쳐진다. 남서 방향으로는 빨간색 방화대교 뒤로 계양산까지 보이는 것 같다. 흐린 날이지만, 공기가 맑아 시계가 참 넓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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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티뷰. 멀리 인천 계양산까지 보인다 |
조금 힘을 내 향로봉으로 향한다. 잠시 거친 길을 걷다 보니 향로봉에 다다랐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바라본다. 향로봉에서는 서울 시내를 보는 맛도 좋지만 백운대와 만경대 정상부부터 보현봉과 비봉까지 이어지는 북한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북한산을 요점 정리한 하이라이트를 제공한다. 이래서 이 봉우리를 수없이 찾아오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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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봉 북한산 하이라이트 뷰. 원효봉에서 비봉까지 |
이제 비봉능선으로 걸음을 뗀다. 향로봉-비봉-사모바위로 이어지는 길은 북한산에서 붐비는 코스 중 하나다.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고 볼거리들이 많다.
향로봉 옆 관봉에서는 좀 전 향로봉 못지않은 북한산 하이라이트가 준비되어 있다. 향로봉에서 보는 것보다 봉우리들이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온 느낌의 풍경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긴 하지만 비봉에 오르면 사방으로 열린 북한산과 서울뷰가 시원하게 차려져 있다. 좀 더 걸어 비봉 능선의 끝에 서면 사모관대를 닮아 특이하게 생긴 명물, 사모바위까지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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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바위 그리고 보현봉 |
사모바위 앞에 쉬면서 비봉과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뒤돌아 보는 기분도 좋다. 사모바위 아래쪽에는 넓은 헬기장이 있는데 단체로 온 산악회들의 회식 장소로도 유명하다. 다만 가끔 회식에서 너무 취한 등산객들이 있어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비봉 능선을 다시 걸어 진관 계곡길로 내려가려다가 마음을 바꿔 비봉에 오르기로 했다.
비봉 능선은 수없이 다니긴 하지만 보통 비봉은 잘 오르지 않는다. 이유는 힘들어서인데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다. 솔직히 겁이 좀 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더 쫄보가 되는 느낌이다.
오늘 함께 산에 오른 벗이 급한 일이 생겨 향로봉에서 먼저 내려간 상황이라 여유도 생기고 해서 오랜만에 비봉까지 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비봉 길은 크게 두 가지 구간에서 공포감을 느끼는데 두 구간 중간에서는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해 어찌할 줄 몰라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마음을 먹었지만 그래도 떨린다. 공포 구간 중간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부여잡고 일단 고!
결국 비봉 정상에 올랐다. 다리는 떨리지만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에 입이 벌어진다.
북한산 주요 봉우리와 서울의 거대한 모습을 모두 품고 있는 곳. 어렵게 오른 등산객 모두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와중에도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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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
비봉은 정상에 표지석 대신 비석이 서 있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현재 서 있는 건 복제 비석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비석 원본은 국보(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석이 있는 자리 또한 사적(제228호)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소중한 봉우리다.
비석의 공식 명칭은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알려진 바와 같이 신라가 고구려를 밀어내고 한강 유역을 차지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다.
오랜 기간 무학대사비라는 등 비석의 유래나 정체에 대해 잘못 알려져 왔는데, 추사체로 유명한 금석학자 김정희에 의해 진흥왕 순수비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오를 때와는 또 다른 공포다. 무섭지만 그래도 꾹 누르고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잠시 능선을 걷다가 진관 계곡 쪽으로 우회전. 잦은 비에 흙이 좀 쓸려 내려간 듯하다. 집중된 시간에 집중된 지역에 쏟아지는 요즘 폭우가 남긴 흉터다.
왼쪽으로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웨딩바위라는 별명이 붙은 바위다. 걸어 올라가 보면 거대한 바위 비탈이 완만해 결혼식장의 버진 로드를 연상시켜 붙은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저 바위를 걸어 올라다닌다는 건데 정말 담력들이 대단하다. 실제로 웨딩바위를 거쳐 관봉으로 걸어다닌다는 포스팅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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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딩바위 |
멀리서 물소리가 들린다. 진관 계곡이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다.
물소리를 따라 걷다 계곡 전망대에서 멈춰 잠시 물멍…. 전망대가 있을 정도로 규모도 꽤 크다. 물이 많은 계절엔 방문객이 꽤나 많다.
앞쪽으로 진관사가 보인다. 마지막으로 해탈문 지나∼극락교 건너∼. 오랜만에 오싹하지만 북한산의 정수를 뽑아낸 알찬 산행을 마무리한다.
글ㆍ사진=박종현 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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