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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재생의 경제학] ② 도심까지 덮친 빈집 공포…건축적 해법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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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8-29 15:33:10   폰트크기 변경      
전국 폐허 주택 실태와 대책

전국 곳곳에 비주거 상태로 방치

골목길 담벼락 붕괴 등 ‘시한폭탄’

관리대상 기준 전남 2만가구 최다

도시지역도 무려 5.6만가구 달해


행정중심 대책 일회성 개선 ‘한계’

공동체 회복ㆍ지역특색 반영 필요

건축사 ‘코디네이터’ 활용안 제기



[대한경제=전동훈 기자] “집으로 들어가려면 이 골목을 반드시 지나야 하는데,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마다 담벼락이 무너질까 두렵습니다.”

지난 20일, 밤사이 서울에 기습 호우가 쏟아진 뒤 꼭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의 한 60대 주민 이 모씨는 이 같이 불안을 토로했다. 서울에서 빈집이 가장 많은 성북구 주민들은 ‘도심 속 시한폭탄’으로 방치된 빈집을 서둘러 철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외벽은 속살을 드러낸 채 갈라져 있었고, 지붕은 폭격을 맞은 듯 주저 앉았다. 허물어진 벽돌과 금이 간 기왓장, 부서진 가재도구가 뒤엉킨 앞마당에는 ‘구조물 붕괴 위험, 접근 금지’라는 안내문이 노끈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언덕 위를 지나 도착한 또다른 집에는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듯 각종 고지서가 수북이 쌓였고, 깨진 창문 너머로는 고양이 세네 마리가 폐허 속을 맴돌았다.


서울 성북구 북정마을의 한 골목에 남겨진 빈집. 지붕은 내려앉고, 외벽은 갈라졌다. ‘구조물 붕괴 위험’ 안내문이 붙은 채 방치돼 있다. / 사진=전동훈 기자.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3월 개설한 빈집 현황 누리집 ‘빈집애’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의 빈집은 13만4009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지자체 행정조사를 기반으로 한 ‘관리 대상 빈집’ 기준으로, 일시적 공실까지 포함하는 통계청 주택총조사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실제 철거 및 정비 사업에 활용되는 기초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국 빈집은 도시에 약 5만6000가구, 농어촌에 7만8000가구가 분포한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2만6가구로 가장 많고, 전북(1만8300가구), 경남(1만5796가구), 경북(1만5501가구), 부산(1만1471가구), 강원(7091가구) 등 순이다.

빈집이 생겨나는 배경은 매매ㆍ임대 대기 상태, 공사로 인한 일시적 공실, 상속에 따른 법원 결정 대기, 노후화로 인한 철거 예정 등 다양하다.


특히 농어촌 지역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이른바 ‘사회적 빈집’이 대다수인 데 반해, 도심은 정비사업 지연이나 지구 지정 해제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같은 빈집이 한 채에 그치지 않고 주변으로 확산하며 악순환을 낳는다는 점이다.


성북구 북정마을의 한 폐가. 창문이 깨져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주택 길가엔 쓰레기가 수북이 쌓였다. / 사진=전동훈 기자.


빈집이 단순한 주거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미치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5월 발표한 ‘범정부 빈집관리 종합계획’이 대표적이다. 도시와 농촌으로 이원화돼 있던 기존 정책을 전국 단위로 통합 관리하겠다는 게 골자다.

계획에는 도시ㆍ농어촌 빈집특별법 제정과 국가ㆍ지자체의 관리책무 신설, 정기 실태조사 및 국가 통계관리 체계 구축, 빈집은행 활성화 지원사업 등이 포함됐다. 또 빅데이터 기반의 위험지역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고, 철거 부지를 임대주택, 창업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커뮤니티 시설로 전환할 경우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담겼다.

다만 행정 중심의 접근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일회성 환경 개선에 머물러 공동체 회복이나 지역 고유의 특색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수요를 고려하지 못한 귀촌마을 조성이나 워케이션 단지 구축사업이 실패로 끝난 사례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빈집의 현장 여건과 법적 조건을 정확히 진단하고, 공간의 새로운 쓰임을 기획할 수 있도록 건축사의 전문성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빈집을 재활용하려면 대지 조건, 도시계획 제한, 용도지역 규제 등 제도적ㆍ물리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건축사는 공간과 행정의 코디네이터로서 빈집의 활용 가능성과 한계를 제시하고, 실현 가능한 비전을 설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은 사정이 더 절박하다. 전남 소재 A사 대표는 “정주 여건 자체가 취약한 데다 거주 매력도가 낮아 상업용으로 활용하기에도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며 “낮은 지가와 넓은 외부 공간을 장점으로 삼아 선택과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경북지역의 B사 대표는 “지역 특화산업의 거점 공간, 시니어 주택, 학습시설 등 테마를 확실히 설정해 전환하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지역의 김용각 건축사는 “지역에 대한 이해와 정서적 풍토에 해박한 지역 건축사를 전담 매칭해 빈집을 사정에 맞게 재생하고, 지역 경제와 공동체 회복을 함께 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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