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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채희찬 건설산업부장
채= 지난주 고용노동부의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 뒤 조달청이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와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 안전항목을 가점에서 배점ㆍ감점 체제로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공공시장 영향부터 짚어보죠.
백= 결정적 변화는 ‘가점 보완이 사라진 절대평가’ 체제입니다. 중대재해 이력에 단계별 감점이 바로 이뤄지고, 반복 시 입찰참가 제한ㆍ등록 말소ㆍ과징금까지 3중 제재가 작동합니다. 낙찰의 1차 관문이 ‘안전 만점’이라 입찰자가 줄고 국책사업 유찰ㆍ지연 위험이 더 커진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대형사 배제 효과도 두드러질 수 있어요. 현장이 많아 ‘연간 다수 사망’ 노출이 높다 보니 기술·재무가 우위여도 안전점수에서 미끄러지면 입찰 참여가 무의미하니까요. 반대로 사고 이력이 적은 중견사로 수주가 쏠리면 대형 국책사업 수행 역량 공백이 우려됩니다.
채= 그런데 기술형입찰은 제재 대상에서 빠졌죠?
최= 조달청이 기획재정부와 상의해 국가계약법으로 제재 가능한 범위만 공개했습니다. 기술형입찰은 국토교통부 소관에 맡기겠다는 거죠. 문제는 곧 공공·민간을 아우르는 제3자 검증(이른바 ‘건설안전기본법’ 체계)이 들어오는데, 그 전까지 조달청 배점ㆍ감점제를 상시로 밀어붙이면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등록 말소와 과징금, 입찰 제한은 예산ㆍ계약 전반을 아우르는 사안인 데다, 입찰 제한는 기재부가 정리해 발표할 성격인데 조달청이 먼저 나서 혼선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법령ㆍ고시ㆍ세부기준 간 정합성 검증 없이 현장 적용을 서두르면 소송ㆍ분쟁 리스크만 커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네요.
백= 시장 영향도 냉정히 봐야 합니다. 이미 추정가격 300억원 이상 종심제 실참여사가 60여 곳 수준인데 배점ㆍ감점이 본격화하면 ‘안전 만점권’으로 쏠려 경쟁성이 떨어지고, 중견ㆍ중소사의 공공 진입 문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국책사업 추진 주체가 위축되면 공급망과 준공 일정 전반이 흔들릴 가능성도 큽니다.
채= 정부가 보완 방안을 고려하고 있을까요?
최= 관가 기류를 종합하면, 애초 ‘원스트라이크 아웃’까지 검토하던 부처들이 한발 물러나 사고 수준과 회사 규모, 고용 인원 등을 반영한 차등 감점을 검토 중입니다. 다만, 조직 분리를 앞둔 기재부가 규제를 통해 권한을 강화하면 입찰 제재가 업계 기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업계는 오는 11월 적용 전에 현장 의견을 반영해 세부 설계를 정밀 조정하고, 도입 전 특정 사업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촘촘히 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채= 화제를 돌려 최근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사업의 기본계획을 취소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와 건설공사가 난관에 봉착했다죠?
백= HJ중공업은 지난해 6월 추정금액 5609억원 규모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 방식인 ‘새만금국제공항 건설공사’의 실시설계 적격자로 선정됐었죠. 당시 현대건설, DL이앤씨와 치열한 경쟁 끝에 따냈는데,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악재를 맞았습니다. 환경단체가 지난 2022년 6월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는데, 서울행정법원이 3년 만에 이를 받아들였어요. 법원은 일대 조류 충돌 위험성을 비교 검토하지 않은 점, 공항 건설이 일대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인정했습니다.
최= 이 공사는 조만간 실시설계를 끝낸 뒤 오는 2029년 개항을 목표로 연내 착공할 계획이었죠. 물론 이번 판결은 확정 판결이 아니라 피고인인 국토교통부가 항소할 경우 기본계획에 대한 효력을 유지해 예정대로 추진해나갈 순 있어요. 문제는 1심 판결이 나온 뒤 환경단체가 이번 소송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사업과 관련한 모든 절차를 중단해 달라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거예요. 이게 받아들여지면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어 2029년 개항은 물 건너 가는거죠.
백= HJ중공업이 기본ㆍ실시설계에들인 비용만 현재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설계비는 시공사가 자체적으로 투입한 비용이이고 아직 국토부와 계약을 맺기 전이라 기성금을 청구할 근거도 없죠. 착공 전에 계약을 체결한 뒤 기성금을 청구하면서 회수해야는데,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문제가 커집니다. 모든 절차가 중단돼 착공은커녕 향후 사업 자체가 주저앉게 될 수 있으니까요. 확정 판결 전까지 관련 비용이 모두 매몰되는 셈이죠.
이런 사례는 이례적인 만큼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규정이나 기준도 부재한 상황입니다. 시공사는 소송 당사자도 아니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죠. 현재로서는 가처분이 기각돼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거나 인용되더라도 2심에서 승소한 뒤 환경단체가 상고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텐데,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에요. 지난한 시간을 지나 이 문제를 둔 소송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채=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이나 걸렸는데, 확정 판결까지 얼마나 소요될 지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가처분까지 인용되면 시공사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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