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300억은 불법 뇌물… 노소영 기여로 참작하면 안돼”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이른바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이 다시 2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재산분할 과정에서 노 관장의 부친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SK에 대한 금전 지원을 참작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원이 넘는 돈을 줘야 한다고 본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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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진: 연합뉴스 |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현금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이후 1년 3개월 만이다.
다만 2심이 책정한 위자료 액수 20억원은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상고심 재판에서는 양측이 재산을 나눌 때 노 전 대통령의 금전 지원을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해야 하는지가 최대 쟁점이 됐다.
노 관장은 이혼 소송을 내면서 최 회장의 SK 주식 중 50%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앞서 2심은 최 회장이 SK 지분을 얻는 과정에 노 전 대통령이 선경(SK의 전신)에 제공한 비자금 300억원이 흘러들어갔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주식 형성에 부부의 공동 기여가 있다고 봤다. 노 관장 측이 SK의 성장에 무형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1991년경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300억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ㆍ반윤리성ㆍ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서는 안 된다”며 “원심 판단에는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와 재산분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민법 제746조는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2심의 재산분할 비율 판단(최 회장 65%, 노 관장 35%)도 잘못됐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기여도 평가에 있어 참작해서는 안 될 노 전 대통령의 금전 지원 사실을 함께 고려했다”며 “전체 분할대상 재산에서 최 회장 명의 SK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이는 원심의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최 회장이 한국고등교육재단,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과 친인척에게 증여하는 등 이미 처분해 갖고 있지 않은 재산도 분할대상으로 본 2심 판단도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 부부 일방이 부부공동생활이나 부부공동재산의 형성ㆍ유지와 관련 없이 적극재산을 처분했다면 해당 적극재산을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그대로 보유한 것으로 보아 분할대상 재산에 포함할 수 있으나, 그 처분이 부부공동생활이나 부부공동재산의 형성ㆍ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분할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내놨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88년 청와대에서 결혼해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결혼 27년 만인 2015년 최 회장은 ‘혼외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노 관장과 이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2017년 7월 최 회장은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노 관장과 합의에 이르지 못해 소송까지 번졌다.
1ㆍ2심의 판단은 크게 엇갈렸다.
1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에 재산분할 금액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1심에서는 최 회장의 SK 지분은 ‘특유재산’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노 관장이 SK 주식의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 등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현행법상 부부 중 한쪽이 상속이나 증여로 취득한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 2심은 최 회장의 SK 지분도 재산분할 대상으로 보고 재산분할 금액을 1심보다 20배 넘게 늘렸다. 노 관장의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20년 전 남긴 ‘선경 300억’이 적힌 메모지를 비롯해 SK가 발행한 약속어음 사진 등을 근거로 ‘비자금 300억원이 SK에 유입됐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의 존재는 확인된 바 없으며, SK 성장과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바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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