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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구광모式 경영 혁신’ 본격화…LG, 효율 경영 급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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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0-24 05:00:16   폰트크기 변경      

그래픽:대한경제


온화한 LG의 상징, 구조적 경쟁력 위해 변화 나서


구광모號 경영 6년차, 노사 평화 모델에서 ‘성과주의 LG’로


[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코스피가 사상 첫 4000선을 목전에 두며 호황을 구가하는 사이, LG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 안팎에서는 ‘희망퇴직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창업 이래 ‘인화(人和)’를 핵심 가치로 내세워온 LG까지 인력 효율화에 나서자, 재계에선 “사람 중심의 경영도 예외 없는 생존 경쟁의 한복판에 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 8월 TV사업부에서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을 시작으로, 이달 들어 그 대상을 전 조직으로 확대했다. LG디스플레이는 근속 3년 이상 사무직을 대상으로 최대 3년치 위로금을 지급하며, 1년 만에 다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LG화학은 석유화학 부문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LG유플러스는 근속 10년 이상 직원에게 최고 5억 원 수준의 보상을 제시했다. LG생활건강은 35세 이상 판매직까지 대상을 낮추며 사실상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그동안 LG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노사분규가 가장 적은 기업으로 꼽혀 왔다. 내부에서도 ‘노사불이(勞使不二)’ 정신을 강조하며 협력적 조직문화를 유지해왔다. 그만큼 최근 희망퇴직 행렬은 이러한 인화정신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그룹 핵심 계열사 대부분이 동시다발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LG 특유의 ‘사람 중심’ 철학이 효율 중심 경영의 파고 앞에서 재조정을 겪는 모습이다.

이번 희망퇴직 바람의 직접적인 배경은 계열사별 실적 둔화다. LG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산 저가 공세로 생활가전 수익성이 악화됐고, LG디스플레이는 광저우 공장을 매각하고 적자 탈출에 나서고 있다. LG화학은 석유화학 시황 급락으로 본업이 흔들리고 있다. LG생활건강 역시 중국 관광객 감소와 면세 매출 급감으로 주력인 화장품 사업에서 지난 2분기 20여 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단순한 실적 악화만으로 이번 결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구광모 LG 회장이 주도하는 ‘선택과 집중’ 중심의 체질 개선이 구조조정의 더 큰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구 회장은 올해 초 사장단 회의에서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효율 중심 경영으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인화’를 앞세운 조직문화 아래 미뤄왔던 인력과 사업 구조 재편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2018년 취임 이후 구광모 회장은 LG의 온건한 조직문화를 ‘효율 중심ㆍ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LG가 그동안 인재를 내보내기보다 다른 부서나 계열사로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던 만큼, 이번 동시다발적 희망퇴직은 구 회장의 경영 철학이 전환점에 도달했음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LG는 과거 ‘노사 십계명’을 제정하며 ‘공동체적 관계’를 선언했고, 정부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꾸준히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과 중심 경영과 내부 격차 확대에 따른 불만이 커지고 있다. LG전자 노조는 올해 임금 제도 개편 과정에서 “예전에는 회사가 직원의 장기 성장을 고려했다면, 지금은 성과와 효율이 먼저”라며 “성과를 중시한다면 SK나 삼성처럼 보상도 그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상 최대 실적 시기에도 투자를 이유로 성과급이 축소된 사례가 많았다”는 불만도 나왔다.

희망퇴직금 수준 역시 금융권이나 외국계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달 LG유플러스를 퇴사한 A씨는 “72개월치 급여를 받았지만, 기본급이 낮아 실제 체감 금액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LG의 변화가 단기적으로는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적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산업분석가는 “구광모 체제의 효율화는 불가피하지만, 인화의 핵심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유지돼야 지속 가능한 혁신이 가능하다”며 “단순한 온정주의가 아닌, 고령자 재고용과 디지털 전환 교육 등 ‘인화 2.0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심화영 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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